충무로 첫 네온사인 광고로 눈길
샘표식품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충무로에서 출발했다. 일본인이 버리고 간 삼시장유양조장을 창업주인 고(故) 박규회 회장이 인수하면서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49. 샘표 간장
박 회장은 “앞으로는 장 담그기가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며, 누구나 위생적으로 제대로 만든 장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호기롭게 간장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판로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간장을 사 가기만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박 회장은 소비자 접점 구축에 나섰다.
신문 지면에 간장 광고를 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직원이 간장병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샘표 간장을 맛보게 했다.
50년대엔 주부 사원도 고용해 방문 판매도 시작했다. 주부 사원이 중산층 이상 가정을 방문해 샘표 간장을 홍보하고 주문을 받으면 공장에서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58년엔 충무로 본사 사옥 옥상에 대형 네온사인 광고판을 만들어 샘표식품을 홍보했다. 6.25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 전 서울 도심에 샘표식품이란 네온사인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61년 국내 최초의 CM송을 선보인 것도 샘표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란 가사와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산업화로 사람이 도시로 몰리면서 부엌의 필수품인 간장을 담아 먹기 힘들게 되면서 샘표 간장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간장 파동 위기 TV 광고로 돌파구 마련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간장 파동이 3차례나 이어지면서 회사는 휘청였다. 85년 무허가 간장 업체가 비위생적으로 제조한 간장을 팔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박 회장은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는 직접 작성한 문안을 들고 광고에 등장했다. 주요 고객층인 주부가 언제든 생산 공장에 오면 개방하고 견학을 해 눈으로 직접 안전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이 이때 만들어졌다. 박 회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직접 확성기를 들고 제조 공정을 설명해 공장을 찾은 소비자의 호응을 끌어냈다. 장수기업으로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다.
501ㆍ701…간장 뒤 숫자 의미는
좋은 맛을 내는 간장을 만들기 위해 고급 대두와 통밀의 최적 배합을 찾았고, 가장 적합한 미생물로 발효시켜 6개월 이상의 숙성 과정을 거쳤다. 501이란 숫자는 간장 품질 기준에서 나왔다. 간장의 단백질 함유량에 따라 1.0%가 ‘표준’, 1.3%는 ‘고급’, 1.5%를 ‘특급’으로 분류한다. 샘표 간장은 1.5% 특급 간장으로 분류됐는데 1.5%가 마케팅에선 각인 효과가 부족해 1.5를 뒤집어 501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샘표는 염도를 낮춘 저염 간장, 참숯으로 걸러 맛이 부드러운 참숯 간장, 다양한 향신료를 넣은 향신 간장, 국물 요리에 기본으로 사용되는 국시장국 등 3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간장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 직원 20%가 연구원인 회사
샘표의 3대 박진선 대표는 “해외 진출의 목적은 우리 음식의 세계화에 있다”며 “‘우리의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한다’는 샘표의 글로벌 전략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