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접은 ‘그린벨트 해제’ 후폭풍
하지만 주변은 이미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여 있다. 2010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내곡공공주택지구(4629가구)다. 이 일대는 그린벨트 해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후보지로 꼽히는 곳이다. 마을을 찾은 것은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방침이 오락가락하던 19일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은 “결론 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부동산 해결 능력 한계 자인한 꼴
“정책 불신으로 시장 불안” 우려도
“강남 환경만 중요한가” 반발까지
수요 억제 규제 정책의 역풍 지적
주민들의 ‘유보적’ 반응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마을을 찾은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 불가’ 선언을 했다. 문 대통령이 주택 공급 방안 발굴을 지시한 이후 18일 동안 이어지던 그린벨트 갑론을박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서울 강남 그린벨트를 한 뼘도 못 건드린 이번 결정 후 만만찮은 후폭풍이 일 조짐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정세균·이낙연·추미애 여권 유력 ‘잠룡’들의 독자 목소리로 ‘권력의 원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공급 효과보다는 의지 확인 의미
이런 사실은 국토부 국토환경성평가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탑성마을 주변에서 4, 5등급 땅이 보이지만, 이미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송동마을도 마을 자체는 5등급으로 분류됐지만, 그 주변은 1, 2등급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장 확인 결과 2등급 땅은 각종 조경수를 기르는 농원들이었고, 1등급 땅은 우면산 등성이였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우면산 자락을 파헤칠 경우, 시민들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곳들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그린벨트 가운데 3~5등급 지역을 활용하면 5만 가구 정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 정도 물량으로 서울 주택 수요에 대응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정부의 공급 의지가 강력하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기존 국공유지를 통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서울시 주택시장 안정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린벨트 사수는 서울 이기주의?
이런 불만은 2018년 수도권 공급 대책에서 3기 신도시 방안을 발표할 때부터 1기 신도시 주민을 중심으로 나왔다. 3기 신도시 입지를 보면 이런 목소리가 일리 없지 않다. 3기 신도시 입지는 거의 그린벨트 안이다.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1~2급지 비중은 ▶남양주 왕숙1지구 52.9% ▶왕숙2지구 44.0% ▶인천 계양지구 92.8% ▶과천지구 64.5% 등에 달한다. 등급을 막론하고 한 뼘의 그린벨트도 훼손 않겠다는 서울시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환경단체들은 경기도 고양시 창릉 등 5곳의 3기 신도시 조성으로 32.7㎢의 그린벨트가 해제될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 그린벨트의 5분의 1이 넘는 면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바뀐 입장도 눈길을 끈다. 이재명 지사는 3기 신도시를 위한 경기도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서민 중심의 경기도형 주거정책을 3기 신도시 조성계획에 접목하겠다”며 환영했다. 그랬던 그가 서울시 그린벨트에 대해서는 해제 불가론을 주장한 것이다. 경기도 개발 필요성이 명분일 수는 있으나, 환경 문제만을 놓고 보면 이율배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강남·강북 차별론마저 일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주택 공급 부지로 활용하겠다는 군 소유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 지역이다. 국토환경성평가지도 확인 결과, 클럽하우스가 위치한 땅은 5등급으로 분류됐지만, 필드는 보존 가치가 비교적 높은 2등급으로 매겨져 있었다. 2018년에도 정부는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이곳도 그린벨트”라는 서울시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었다.
뾰족한 공급책 없다는 신호일 수도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을 잡는다면서 수요 억제에 치우쳐 균형 있는 공급책을 고민하지 않은 정부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정책 일관성이나 안정성은 제쳐놓고 정치적 실익 차원에서 부동산 문제에 접근하다 결국 역풍을 맞은 것이 이번 18일간의 그린벨트 해프닝이었다. 부동산 문제 실패로 위기를 맞았던 임기 후반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린벨트, 반드시 선(善)이기만 할까
그린벨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그린벨트 해제 반대(60.4%)가 찬성(26.5%)의 두 배가 넘었다. 그린벨트의 가치로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방지가 먼저 꼽힌다. 도시들이 서로 붙어서 발전하는 연담화(連擔化) 현상을 막고,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허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논거도 만만찮다. 그린벨트가 도시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막는 바람에 도시 내부 가용지 고갈로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린벨트를 넘어서 ‘비지(飛地)적 개발’이 이루어지는 ‘스프롤(sprawl) 현상’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서울 그린벨트 바깥 지역인 용인·광주시 등지의 난개발이 대표적 예다. 도시 중심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교통량이 증가하고, 공해도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심지의 용적률을 높이는 등 고밀화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시는 부정적인 입장을 지켜왔다. 일각에서 서울시가 집값을 올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논거도 만만찮다. 그린벨트가 도시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막는 바람에 도시 내부 가용지 고갈로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린벨트를 넘어서 ‘비지(飛地)적 개발’이 이루어지는 ‘스프롤(sprawl) 현상’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서울 그린벨트 바깥 지역인 용인·광주시 등지의 난개발이 대표적 예다. 도시 중심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교통량이 증가하고, 공해도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심지의 용적률을 높이는 등 고밀화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시는 부정적인 입장을 지켜왔다. 일각에서 서울시가 집값을 올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