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립축산과학원은 올 하반기 한우 개량을 이끌어 갈 ‘보증씨수소’ 20마리를 뽑았다고 밝혔다. 전국 한우 300만 마리의 아빠 자격은 국가가 공인한 보증씨수소에게만 주어진다. 생후 6개월 된 수송아지 중 정밀 시험을 통과한 극소수만이 씨수소로 선발돼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이들 씨수소의 정액을 전국 축산 농가로 공급해 인공수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먹는 한우엔 자연교배가 없다는 얘기다.
충남 서산 한우개량사업소 현장
최우수 등급은 무게 1 t 길이 2m
“한우개량의 가치 연 2000억이상”
한우개량사업소는 해발 190m의 야산에 있었다. 산 아래 마을에 있다가 2011년 구제역 위험을 피해 산으로 이주했다. 사실 말이 산이지 나무 한 그루 없이 풀만 자라는 방목지다. ‘입소 군번’이 다른 씨수소 267마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평소엔 철저한 컨디션 관리와 정액 체취 등을 위해 우사에서 생활하다 가끔 운동 삼아 산책을 한다.
귀에 ‘1203’ ‘1180’이라 쓰인 식별표를 단 씨수소 두 마리를 연구원이 우사에서 끌고 나왔다. 언뜻 봐도 흔히 보던 소와는 체급이 달랐다. 1203호는 체중 1162㎏에 몸길이 225㎝의 육중한 몸집으로, 꼬뚜레를 잡고 선 성인 남성 연구원이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가끔 내지르는 소울음은 포효에 가까웠다. 차의수 종축개량장 총괄부장은 “1203호는 씨수소 유전능력 평가에서 지난해 1위, 올해 3위를 차지한 ‘최우수 등급’”이라고 귀띔했다.
검정은 총 2단계다. 소 자체의 체중과 육질 등을 살펴보는 1단계 평가를 통과하면 ‘후보 씨수소’가 된다. 후보 씨수소의 정액을 추출해 암소와 계획교배한 뒤 ‘아들 송아지’ 또한 우수한지 살펴 보는 것이 2단계 평가다. 아빠소의 형질이 우수하더라도, 아들 소에 제대로 유전되지 않으면 ‘보증 씨수소’가 될 수 없다. 차 부장은 “새끼에게 유전되지 않는 ‘우수함’은 단순한 돌연변이일 뿐이라, 개량사업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씨수소를 통한 한우개량사업을 통해 쇠고기 품질이 크게 높아졌다. 1등급 출현율(한우 1마리를 도축했을 때 1등급 이상 고기의 비율)이 20년 전에는 49%로 절반에 못 미쳤는데, 2005년 70.3%로 뛰어올랐고 2018년부터 88.8%를 유지하고 있다. 한우 도축 후 고기 무게도 2007년까지 396kg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446kg으로 뛰어올랐다.
박미나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한우개량사업의 경제적 가치는 매년 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미 100년 이상 개량해온 일본 화우 등 최고급 쇠고기와도 경쟁할 수 있는 품질을 갖췄다”고 말했다.
서산=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