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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치 탓에 냉·온탕을 오가는 두산

중앙일보

입력 2020.07.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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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욱 산업1팀 기자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은 두산 내부 반응을 종합하면 “그래도 싫은 소리 들은 것보단 낫다”로 정리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전북 부안군의 풍력핵심기술연구센터를 찾아 두산중공업의 해상 풍력발전 성과를 보고받은 뒤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다.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한 것을 두고서다. 문 대통령은 두산중공업의 65.5m짜리 풍력발전기 블레이드(날개)를 보고선 “굉장히 칭찬받을 만한 개발 사례”라는 말도 했다.
 
두산 안팎과 에너지 업계에선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두산 달래기’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산이 겪고 있는 경영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지목되고 있어서다. 두산중공업은 회사 전체 매출의 13~15%가 원전 설비 제작·유지·보수 영역에서 나오는데,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막혀 그만큼 돈을 못 벌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위기가 가중됐고, 결국 5월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3조6000억원을 빌렸다. 두산은 두산솔루스·두산건설 등 일부 계열사와 두산타워·클럽모우CC 등 자산을 팔아 일부 빚을 갚을 예정이다. 또 궁극적으로 돈 버는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2025년까지 해상풍력을 연 매출 1조원 사업으로 키우기로 했다. 태양광 등을 더해 신재생에너지 사업 매출 비율을 30%까지 늘린다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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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두산 입장에선 ①정부가 돈을 못 벌게 하고→②회사가 어려워지자→③돈을 빌려주면서→④그 조건으로 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키워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 지어서 돈 벌려는 악당 취급할 땐 언제고, 다 망할 것 같으니 다독이냐”는 푸념도 새 나오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두산에게 풍력 에너지 사업 성공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2005년부터 이 사업에 도전해온 두산은 개발·설계·준공·운영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내 회사라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탈원전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도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14일)을 발표한 뒤 첫 현장 방문으로 풍력단지를 찾았다는 건 두산으로선 또 다른 기대다.
 
남은 불안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부안 현장에서 대통령이 ‘2030년 세계 5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 의지를 밝혔지만, 임기는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소음·진동·자기장에 따른 어업 방해 논란 등이 훗날 정치적으로 왜곡될 소지가 남아 있다. 정치가 키우고 정치 때문에 실패하는 또 다른 산업이 생겨선 곤란하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