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는 “특별한 의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보수진영에선 “이승만 정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호칭에 인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단어는 약력 소개하는 대목에서 등장
박 처장이 이날 낭독한 추모사를 보면 7차례 언급된 이 전 대통령은 모두 박사라는 직책으로 표현됐다.
“오늘 우리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남 이승만 박사님의 서거 55주기를 맞는다”는 서두로 시작해 “다시 한번 박사님의 서거 55주기를 맞아 깊은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는 애도로 끝을 맺을 때까지다. 추모사 중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 전 대통령의 약력을 설명하고, “대통령 중심제를 확립했다”는 대목에서 언급되는 정도였다.
박 처장은 추모사에 이 전 대통령의 정신과 공을 기리는 내용을 주로 담아 이를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줄곧 ‘박사님’으로만 지칭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술렁거리는 기류가 포착됐다. 일부 참석자들은 “박사가 뭐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보훈처장의 ‘박사’ 호칭이 이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현 정부와 진보진영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의 독재 이력 등 과(過)를 내세우고 건국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박사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과 보수진영에선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수립에 기여했다는 공(功)을 부각해 이승만 국부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현 정부의 보훈 정책을 주관하는 장관급 인사의 발언을 가볍게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권 때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호칭이 달라졌다는 점은 이 같은 의견을 뒷받침한다. 역대 이 전 대통령 서거 추모식에 참석한 보훈처장 연설문을 보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2000년 최규학, 2001년 이재달 당시 보훈처장은 이 전 대통령을 박사님으로 지칭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5·2006년 박유철, 2007년 김정복 당시 보훈처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시절 취임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은 2011년부터 이 전 대통령 서거 추모식에 참석해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님’으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초대 보훈처장을 지낸 피우진 전 처장은 이 전 대통령 추모식에 내내 불참했고, 이후 취임한 박삼득 처장은 올해가 첫 참석이었다.
이날 논란에 보훈처 관계자는 “박사와 대통령 모두 이 전 대통령을 지칭한다고 보고 호칭에 특별한 의도는 담지 않았다”며 “이 전 대통령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초대 대통령이라는 내용을 넣었다”고 해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