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법원은 성희롱을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일명 ‘우조교 사건’의 상고심에서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6년간 변론을 맡은 이 사건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하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3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성적 괴롭힘’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파기했다.
고 박 전 시장이 싸웠던 2심 판결 보니
서울대 화학과에서 1년 계약 조교로 일한 우모씨는 당시 지도교수인 신모 교수가 기계 사용법 지도를 이유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수차례 했다고 주장했다. 또 불쾌한 언행이나 둘만의 산책을 제안하고 이에 거절 의사를 표시하자 고의로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며 결국 재계약도 하지 않아 일자리도 잃었다고 말했다. 우씨는 신 교수와 학교, 대한민국을 상대로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은 우씨의 피해를 인정했지만 2심은 달랐다. 2심은 박 전 시장측 주장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불법행위로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새롭게 인정하려면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불법행위로 인정되려면 그 행위가 중대하고 철저해야 한다고 봤다. 그 이유로는 “피해자가 당한 경미하고 사소한 사항을 불법행위로 인정하면 그와 함께 활동하는 자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심코 던진 돌에 연못의 개구리는 죽는다
하지만 법원은 “남녀 간의 관계를 투쟁적ㆍ대립적 관계로 평가하는 여성주의적 관점만을 표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남녀 관계에서 일어난 무의식적, 경미한 실수를 모두 법적 제재 대상으로 삼으면 활기차고 자유로운 남녀관계의 자유로움이 사라질 수 있다”고 이유를 썼다. “여성은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을 당할 때 명백히 표시해야 하고, 그런 노력이 여성의 지위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라고도 권고했다.
박 전 시장,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
2016년 열린 박 전 시장의 북 콘서트에서 박 전 시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이 뭔가”라는 질문에 이 판결을 꼽았다고 한다. 성범죄 피해자를 주로 대리해온 서혜진 변호사(더 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성희롱 개념이 없던 90년대 이런 판결을 이끌면서 이 문제를 잘 알았던 분의 말로가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제왕적 권력을 가진 시장이 됐을 때는 본인도 원칙에 따르지 못했고, 성 평등 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지자체임에도 주변에서 이를 거스르지 못했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 밝혀내는 게 우리의 책임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