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국기봉 꽂이. 이게 뭔 대수인가 싶지만 국기봉 꽂이가 아파트 건설기준을 바꾸기도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0일 입법 예고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규칙’ 개정안을 보면 난간에 국기봉 꽂이를 설치하기 어려운 아파트의 경우 동 출입구에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즉 동 출입구 지붕 중앙이나, 출입구의 왼쪽 벽면에 국기봉 꽂이를 두게 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다는 대신, 동 대표로 건물 입구에 태극기를 하나만 달도록 기준을 바꾼 것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모습. [뉴스1]
결국 국기봉 꽂이 때문에 아파트 건설 기준 관련 개정안이 나왔다. 난간 없는 건물의 경우 집집마다 걸었던 태극기가 이제 건물 입구에 하나만 달려도 된다. 국기봉 꽂이의 변화는 가가호호라는 의미의 상실을 보여준다.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 되면서 이런 에피소드는 꽤 많다. 그중 하나가 장독이다. 단독주택에서는 고추장·된장·간장을 담는 장독을 마당에 뒀다. 김칫독도 있다. 이런 장독을 모아 두는 장독대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로 이사해서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땅을 상실해서다. 그렇다고 장독을 실내에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실외 같은 공간인 베란다에 장독을 내놓기 시작했다. 장독 무게가 무겁다 보니 베란다의 안전 문제가 거론됐다.
정부 차원에서 장독을 두지 말자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1971년 준공된 여의도 시범 아파트의 경우 현관문이 있는 아파트 복도에 장독대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김치냉장고의 등장으로 장독이 필요 없어진 지금은 칸막이를 치고 창고처럼 쓴다.
국기봉 꽂이, 장독 같은 작은 것들이 우리 삶터를 만들고 채운다. 도시는 작은 것들의 집합체다. 빠르게 변하는 듯해도 이런 작은 결들이 나이테처럼 남아 지난날을 기억하게 한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