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염재호 칼럼] 정치의 실종과 독선의 대립

중앙일보

입력 2020.07.1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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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1대 국회가 파행으로 출범했다. 여야 모두 20대 국회와 같은 정치는 다시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상임위 구성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21대 국회는 시작됐다. 게다가 거대여당은 마침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독식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연일 거대여당은 소수야당을 탓하고 소수야당은 거대여당을 탓한다. 여당은 야당이 발목잡는 관행을 이 기회에 뿌리 뽑겠다고 하고, 야당은 거대여당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통령은 국회를 탓하고, 여당은 관료와 청와대를 탓하고,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을 탓한다. 서로 상대방을 설득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정치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요하고 상대방 탓을 하면서 국민들이 역성 들어주기만을 바란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산물이다. 모든 이슈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해진 답만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잃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이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독선의 대립만 난무한다. 소통과 포용의 협치를 약속했지만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어 단죄하고 독선적 주장으로 시시비비만 따지고 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이루어진 관습은 악습이라고 매도하고, 법적 당위론과 명분을 앞세워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려고 한다.

정치의 블랙홀이 된 검찰 개혁
부메랑돼 돌아오는 독선의 지배
연역적 명분보다 귀납적 정치를
실효·업적에 힘쓰는 정치 해야

21대 국회의 파행은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여야 모두 정당성의 명분만 앞세웠고 타협은 없었다. 법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를 무력화시킨다. 요즘처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정치논쟁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21대 국회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초선의원들도 법조계 출신들이다. 지난 2년여 동안 검찰개혁은 모든 정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공수처 법안처리로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운동권 출신들에게 독재정권의 검찰은 악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검찰개혁은 국민들의 오랜 염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 살면서 검찰에 가본 경험이 전혀 없는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 검찰개혁은 얼마나 중요할까. 말로는 여야 모두 국민들을 위한 민생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우선인 것 같다.
 
정치는 귀납적이지만 법을 앞세우는 명분론은 연역적이다. 특히 독일식 대륙법 전통이 뿌리 깊은 우리 법체계는 영미법 체계와 달리 연역적 특성이 강하다. 성문법 체계에서 정답을 갖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불문법 체계에서 현실의 실증적 논쟁을 바탕으로 합리적 결론을 찾아나가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조선 시대의 당쟁도 정당성을 앞세운 명분싸움으로 점철되었다. 지난해 지훈국학상의 영예를 안은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선조 때 지식인들이 권력투쟁하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던 사림파가 현실 정치권력을 잡으면서 당쟁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사회개혁을 설득과 타협의 정치로 풀지 않고 당위론을 앞세워 상대방을 배제하고 정죄하면서 독선의 지배라는 모순을 낳았다. 선한 의지를 갖고 나라를 걱정했던 사림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명분론만으로 권력투쟁의 나쁜 정치로 치달았던 역사가 뼈아프다. 오늘의 정치를 미래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치열한 당쟁을 하다가 결국 참혹한 임진왜란을 자초한 아픈 상처는 4백여 년이 지난 오늘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교훈이다.


당시 유일하게 동서분당의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있었던 율곡은 동인과 서인 양쪽에서 오해를 받았다. 율곡은 당쟁의 현실을 개탄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선조에게 올린 상소 ‘만언봉사’서 이렇게 간언했다. “정치하면서 시의적절함을 모르거나 일을 하면서 실효와 업적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과 현신이 서로 만나더라도 통치의 효과가 없습니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당쟁의 명분론보다 국정운영의 경세론을 간절히 원했던 율곡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미·일·중·러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신질서 구축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희망적 이상주의보다 냉철한 현실주의가 주효하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였지만 명분론을 버리고 명나라와 왜의 국제정세를 간파하여 현실주의 접근으로 간언한 율곡의 십만양병론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선조가 원망스럽다.
 
21세기 인류문명의 대전환은 코로나 사태로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국정운영은 명분에 바탕을 두고 남 탓만 하는 독선의 지배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타협의 정치로 풀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생계가 걱정되는 영세상인들의 한숨과 취업의 문이 막혀 낙담한 청년들의 고통이 사법개혁의 염원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다. 원칙과 명분만을 앞세우는 독선의 지배는 시간이 흐르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제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기보다는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미래를 걱정해주면 좋겠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