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부장 김성주)는 지난 10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0)에 대한 첫 심리를 열었다. 아내를 차로 치어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 7일 징역 6년을 선고받은 A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 A씨는 지난해 9월 9일 오전 10시6분쯤 전주지법 정문 맞은편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기다리던 아내 B씨(47·여)를 자신의 벤츠 승용차로 들이받아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일로 B씨는 14주간 병원 치료가 필요한 척추 골절 등 상해를 입었다.
[이슈추적]
전주지법, 살인미수 50대 징역 6년 선고
이혼소송 중 아내 차로 치어 중상 입혀
남편 "운전중 안경 줍느라…아내 못봐"
재판부 "진술 오락가락…살해 의도 있어"
이에 A씨는 2017년 9월 27일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A씨 부부는 사건 당일 9시40분쯤 전주지법에서 열린 이혼소송 1심 판결 선고 전 조정 절차에 참여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B씨)와 동거남은 피고인(A씨)에게 위자료로 1700만원을 지급하고,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재산 분할로 3700만원을 지급하되 이를 상계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B씨에게 외려 본인이 돈을 줘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범행한 것으로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1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김유랑)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본인 차량으로 피해자를 들이받은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A씨 주장을 거짓으로 본 까닭을 판결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①아내인 줄 몰랐다?
②사고 지점서 4배 빨라진 車속도
③충돌 직전 아내 쪽으로 차 꺾은 남편
④목격자 "술 취한 줄…" "사람 치고도 안내려"
⑤"안경 바닥에 떨어졌다고 믿기 어려워"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열거하며 "믿기 어렵다"고 했다. 안경착용 시점 등 안경을 둘러싼 진술은 A씨가 과실에 의해 사고를 냈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인데도 진술이 오락가락해서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사건 당일 법원에서 나오면서 안경을 쓰고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관이 "법원에서 나올 때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반문하자 "차 타러 가면서 썼다"고 말을 바꿨다. 수사관이 다시 "비가 내려 한 손으로는 우산,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안경을 썼냐"고 묻자 "차 근처에 도착해서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며 진술을 또 번복했다.
재판부는 A씨가 차에 탄 후 안경을 쓰지 않은 경위에 대한 진술도 일관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안경이 비에 젖어 조수석 의자에 올려놨다"→"차에 성에가 껴서 안경을 습관적으로 벗어놨다"→"비가 와서 안경에 성에가 껴 쓰지 않았다"→"조수석에 올려놨던 성에 낀 안경이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며 진술을 계속 바꿨다.
A씨는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2차로로 주행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보행자를 보지 못했고 보행자가 갑자기 차도로 진입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정작 이때는 A씨가 "안경을 줍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사실은 없었던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속칭 '짝눈'이라는 A씨 주장대로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써야 운전할 수 있다면 사건 당일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습기가 찬 안경이라 운전에 도움되지 않아 벗어놓았다면서 운행 중 이를 무리하게 주우려 한 점 ▶안경이 떨어진 후 15~18초간 대기했는데도 안경을 줍지 않고 큰 도로에서 본격적으로 주행하는 상황에서야 주우려 한 점 등도 수상한 정황으로 꼽았다.
A씨는 사건 당시 "진료 예약을 위해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면서도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는 병원 이름을 잘못 댔다. 재판부는 "예약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하는 대신 직접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이혼소송 중이던 배우자인 피해자를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들이받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라며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다만 "1990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실 외에 전과가 없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