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모델은 좋은데 홍보가 문제였다. 그가 신문사로 찾아와 공동 캠페인을 제안했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답게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콕 짚어 설득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3호점을 연 2003년부터 21호점을 개설할 때까지 2년 가까이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가게’ 캠페인을 진행했다. 매주 1개 지면을 할애했는데, 당시 부서에서 고참도 막내도 아닌 내가 전담하게 됐다.
그는 시민운동가 이전에 변호사로 일했고, 이후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 1월 워싱턴에서다. 서울시장으로 미국 순방 중 워싱턴에 들러 특파원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2022년까지 한반도에서 군사 훈련을 중단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주춤할 때였다. 서울시장 영역을 넘어선 주제였다. 설득력도 맥락도 없었다. 대선주자 행보냐는 질문에 예의 겸손한 웃음을 지었지만, 날카로운 눈빛도 보였다. 그는 권력을 의식하는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법률가로서 모습은 그의 생 마지막에서 보게 됐다. 4년간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고소가 접수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변호사인 그는 피의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리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피해 호소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잔인하고 무책임한 결말이다.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피해 장소로 지목된 시청사에서 장엄한 영결식이 열렸다. 그렇다고 그의 명예가 지켜진 걸까. 서울시장으로 9년. 권력이 독이 됐을까. 그는 시민운동가로 남았어야 했다. 거기까지였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