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의 편지를 대신 읽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접수시키고 밤새워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이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추행 피해에 더해 아마도 박 시장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야 할 피해자의 고통이 느껴졌다.
박원순 고소 피해자 2차 가해 멈추고
재발 막기 위해 진실 반드시 규명해야
물론 진실은 따져봐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그 실체적 진실을 따질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사람이 박 시장 본인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워낙 맑은 분이어서” “모든 여성이 그만한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일방적으로 감싸는 일은 사안을 호도하고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서울특별시 기관장으로 대대적으로 치르는 장례 자체가 2차 가해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사법적 절차와 무관하게 가부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피해자 측은 이미 2차 가해와 관련해 추가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안 그래도 여권 지자체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줄을 잇는 가운데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혀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