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이하경 칼럼] 노영민은 ‘무죄’ 김현미는 ‘퇴출’이 정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0.07.1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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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

22번째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전방위적 세금폭탄이다. 취득세 ·보유세·양도소득세를 한꺼번에 2~3배씩 올렸다. 다주택자가 실제로 살지 않는 주택을 토해놓으라는 선전포고다. 113만 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부동산 스터디’의 운영자 붇옹산은 7·10조치에 대해 “불로소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방향성”이라며 “합법적으로 국가에 집을 고스란히 바치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의 공포는 컸다.
 
문재인 정부는 그 전까지 21번의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52% 폭등했다. 이번에는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이래 수없는 대책이 나왔지만 세금폭탄만으로는 집값을 무릎 꿇린 적이 없었다. 벌써 다주택자들이 팔지 않고 증여를 선택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임대료를 올려 폭탄세금을 세입자에게 떠넘기면 전세대란이 올 것이라고도 한다. 무엇보다도 수요가 넘쳐나는 강남에 공급을 늘리는 대책이 없었다.

투기 광풍 부른 김현미가 주도권?
경제부총리가 정부 대책 지휘해야
비강남 교육·교통 인프라 확충하고
공급 확대는 강남 집중해야 효과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지금 최고의 민생과제는 부동산 대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최선을 다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서민들과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상황인식도 올바르고, 목표도 확고하다.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시장의 신뢰다. 진보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이 정부 들어 아파트값 변동에 따른 불로소득이 493조원이라고 발표했다. 보수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35조원이 감소했다. 진보 정권이 불로소득자의 천국을 만들어 놓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 경실련도 컨트롤 타워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태평하게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 장관은 3년 전인 2017년 8·2조치를 발표한 뒤 다주택자들에게 “사는 집이 아닌 것은 좀 파시라”고 했다. 결과는 부동산 폭등이었고, 다주택자들의 승리였다. 장관이 ‘양치기 소년’이 됐다. 국민들은 “김현미가 하지 말라는 대로 하면 부자 된다”고 한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고향 청주의 아파트를 팔고 반포 아파트를 지키려다 여론이 악화되자 반포 아파트까지 내놓았다. 무주택자가 될 판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해서 투기를 잡았다면 강남에 집이 몇 채가 됐든 무슨 상관인가. 실패한 부동산 정책  때문에 다주택 청와대 참모와 여당 의원, 공직자들이 졸지에 죄인이 돼버렸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던 노무현 정부는 임기 3년반이 지나서야 재정경제부의 의견을 수용해 공급 확대에 나섰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판교·위례·광교·동탄 등 수도권 10곳을 포함한 12곳을 2기 신도시로 지정했다. 주역은 재경부 박병원 1차관이었다.  
 
그와 통화했다. “택지 확보 과정에서 국방부·농림부·문화부 등 10여 개 부처를 상대해야 해서 재경부에서 맡게 됐다”며 “지금 정부가 국토부 장관에게 맡기면 절대로 공급 확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부동산 폭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2일 김현미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긴급보고를 받았다. 공급확대는 물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업무 영역인 세제 정책까지 지시했다.
 
서울 강남은 교육과 교통 인프라가 지나칠 정도로 집중된 곳이다. 이제부터는 다른 지역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강북에 구별로 특목고·자사고를 하나씩만 만들면 사교육 천국 대치동 스카이캐슬은 해체될 것이다. 강남은 집만 나서면 도처에 지하철역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살았던 강북의 홍은동 연립주택 금송힐스빌은 지하철 홍제역까지 걸어서 25분 걸린다. 이런 차별을 깨는 적극적 정책을 내놔야 ‘강남불패’ 신화가 깨진다.
 
공급 확대도 강남을 정조준해야 강남 집값이 잡힌다. 이명박 정부는 강남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해 강남 집값을 잡았다. 정종환 당시 국토부 장관에게 “왜 세곡동·내곡동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직주(職住)근접이 원칙이었다”는 투박하지만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그린벨트가 어렵다면 300% 정도인 서울 재건축 용적률을 뉴욕과 런던처럼 500% 이상으로 높여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도 있다. 불로소득이 걱정되면 수익을 적절히 환수해 차단하면 된다.
 
문 대통령이 투기를 잡고 불로소득을 줄여 땀흘린 노동의 대가를 지켜주겠다는 건 백번 옳은 방향이다. 그러려면 저금리에 갈 길을 잃은 1130조원의 거대한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벤처·창업 생태계라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두더지 잡기식의 요란한 대증요법에 매달리는 무능한 컨트롤 타워는 교체해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1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 4번타자라도 대타를 내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동네야구 4번타자”라는 문 대통령이 합리적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