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가 이승만 후임 고려한 백선엽, 사형 위기 박정희 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7.11 00:41

수정 2020.07.11 18:17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6ㆍ25 전쟁이 막바지였던 1953년 5월 백선엽 장군은 급하게 미국으로 건너갔다. J 로턴 콜린스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의 초청으로 갑자기 잡힌 일정이었다. 방문 기간이 한 달이 넘었다. 왜 갑작스러운 미국 출장이 잡혔을까. 

6ㆍ25 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 [중앙포토]

  
미국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반대해 북진 통일을 주장하고, 반공포로를 독단적으로 석방하려 하자 그를 제거하려는 에버레디(Ever-ready) 계획을 세워 놨다. 물론 이 계획은 실행되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에버레디 계획을 실행한 뒤 조봉암ㆍ조병옥ㆍ신익희 등 정치인에게 사태 수습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만 알려졌다. 
 
일각에서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전복한 뒤 백 장군도 후임자군에 넣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미국, 이승만 제거 후 후임자로 검토
갑자기 미국으로 불러 대통령 면담
숙군 사형위기 박정희 소령 구해줘
나중에 5ㆍ16 주역들과 만나게 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은 “생전 백 장군에게 에버레디 계획 관련 여부를 물어봤는데, 웃으며 ‘풍문으로 들었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미 중앙정보부(CIA)도 나를 찾아왔다’고 덧붙였다”고 전했다. 미국이 에버레디 계획을 가동하는 상황을 위해 백 장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해외로 빼돌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백 장군을 고려했다는 정황은 더 있다. 워싱턴 DC 도착 당일 알레이 버크 미 해군 제독이 백 장군 숙소를 밤늦게 찾았다. 버크 제독은 백 장군에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건의해봐라”며 “당신이 얘기하면 만나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의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을 흔쾌히 들어줬다.
 

미 해군 순양함 로스앤젤레스함에서 백선엽 당시 군단장(오른쪽)이 알레이 버크 제독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알레이 버크 제독은 나중에 미 해군참모총장에 오른다. 현재 미 해군의 주력 이지스 구축함은 그의 이름을 따 '알레이 버크'급이라고 부른다. 백 장군과는 깊은 친분을 나눴다. [중앙포토]

 
백 장군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곤란하다”면서도 “원칙적으론(in principle) 동의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 내용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해도 좋다”고 말했단다.


 
이처럼 백 장군은 한국 현대사에 여러 번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백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1949년 2월 군 내부의 남로당 세력을 색출하는 숙군 과정에서 박정희 소령이 체포됐다. 박정희 소령은 남로당 조직책으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은 사형 위기에 처해 있던 박정희 소령을 만났다. 박 소령이 그에게 “한번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백선엽 국장은 “그럽시다, 그렇게 해보도록 하지요”라고 답했다. 박정희 소령이 다른 군인을 포섭하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남로당 조직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의연한 박정희 소령의 자세를 높이 샀다.

  
백선엽 국장은 미군의 동의와 이응준 총참모장의 재가로 박정희 소령의 형 집행정지를 받아냈다. 박정희 소령은 불명예 제대하는 처분으로 끝났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백선엽=“나가서 하실 일 있나요?”
▶박정희=“마땅한 게 없습니다.”
▶백선엽=“그러면 정보국에서 문관으로 근무하시는 게 어떨까요?”
 
박정희 문관은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당시 전투정보과에는 백선엽 국장이 뽑은 육사 8기생들 가운데 똘똘하다고 소문 난 김종필ㆍ석종선 중위가 근무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훗날 5ㆍ16 군사정변의 주역과 연을 맺은 자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후 백선엽 장군을 생명의 은인으로 대우했다. 사석에선 백 장군이 세 살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형’ 또는 ‘백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