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그 영화 이 장면] 결백

중앙일보

입력 2020.07.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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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영화평론가

박성현 감독의 ‘결백’은 빙산의 일각처럼 솟아난 하나의 사건을 통해,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악행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상가에서 조문객들이 농약 막걸리를 먹게 된다. 그 중엔 시장인 추인회(허준호)가 있고, 범인으로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채화자(배종옥)가 지목된다. 화자의 딸이자 변호사인 정인(신혜선)은 어머니를 위해 법정에 서고, 조사 과정을 통해 마을의 추악한 과거를 대면한다.
 

0710 그영화이장면 [영화 결백]

여기서 영화는 도입부에 롱 테이크 촬영을 감행한다. 추 시장이 탄 검은색 세단이 상가에 도착하면서 장면은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술상에 앉는다. 도지사를 노리는 추 시장. 사람들은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힌다. 화자는 남편이 죽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툇마루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편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딸 정인은 오지 않았다. 이때 추 시장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 사람들이 갑자기 구토 증세를 일으키며 쓰러진다.
 
관객을 압도하듯 이끄는 ‘원 신 원 컷’의 4분 20초짜리 장면엔 ‘결백’을 이해하기 위한 모든 기본 정보가 담겨 있다. 정인의 심란한 가족사, 추 시장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음산한 마을의 분위기. 여기서 영화는 사람들이 막걸리를 토하며 나뒹구는 ‘사건 현장’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담아내며 영화를 시작한다. 이 아수라장에 등장한 정인은, 어머니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