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당구…8600㎞ 떨어져 '신동'이 '황제' 꺾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7.09 15:55

수정 2020.07.0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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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조명우와 브롬달의 비대면 당구대회는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조명우는 이날 50-47로 승리했다. 박린 기자

 
8일 서울 길동의 DS빌리어즈클럽에서 만난 조명우(22)는 “신박하다”고 했다. 분명 스리쿠션 일대일 맞대결인데, 상대가 옆에 없었다. 세계 최초 비대면 당구대회라서, 20대 초반인 조명우가 ‘신기하고 놀랍다’는 신조어를 쓴거다.  
 
코로나19 여파로 세계당구대회는 3월부터 장기간 중단됐다. 스페인 선수 다니엘 산체스가 ‘랜선 대결’ 아이디어를 냈고, 스페인 방송사가 중계사로 나섰다. 대회명은 세계캐롬연맹 버추얼 원캐롬 챌린지. 참가비와 우승상금은 1000유로(135만원)에 불과하지만, 세계 톱랭커 8명이 출전해 8일부터 5일간 우승을 겨룬다. 

코로나가 만든 '스포츠 언택트' 시대
세계 최초 비대면 온라인 당구대회
브롬달 이긴 조명우 "자신과 싸움"
브레이크 댄스도 온라인 배틀 펼쳐

조명우는 8일 서울 길동의 DS빌리어즈클럽에서 비대면 당구대회를 펼쳤다. 아래 컴퓨터 화면은 독일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브롬달의 모습. 박린 기자

 
요즘 국가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선수들은 각자 머무는 집 또는 당구장의 테이블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조명우 아버지 조지언씨는 “이틀 전 당구장에 화상캠을 설치했다. 이런 이색 대결은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김행직(세계 8위) 대신 랭킹 차순위면서 프라이빗 공간을 빌린 조명우(세계 10위)가 출전했다. ‘당구신동’의 상대는 ‘당구황제’ 토브욘 브롬달(58·스웨덴 3위). 조명우는 지난해 국내대회를 6차례 우승한 유망주고, 브롬달은 세계선수권 7회 우승자다. 조명우는 한국시간 오후 8시 서울에, 브롬달은 정오에 독일에 있었다. 둘은 약 8600㎞ 거리에서 맞대결했다.
 
상대 공 위치를 정확히 놓을 수 없다보니, 초구 포지션으로 모든 이닝을 시작해 50점을 먼저 도달하면 승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명우가 먼저 초구를 놓고 득점에 실패할 때까지 치면, 그 다음 브롬달이 초구로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서로를 지켜보며 번갈아 쳤고, 조명우는 자기 차례가 아니면 모니터를 주시했다. 


조명우는 자기 차례가 아니면 모니터를 통해 브롬달의 경기모습을 지켜봤다. 박린 기자

 
경기는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중계됐다. 조명우가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면 채팅창에는 ‘조명우 쇼’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조명우가 16이닝 만에 50-47로 승리했다. 하이런 (한 이닝 연속 최다점) 10점을 기록했다. 조명우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땡큐”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가 끝난 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조명우. 박린 기자

 
카메라가 꺼지자 조명우는 “어휴~ 긴장돼 죽는줄 알았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조명우는 “모니터로는 상대가 숨소리가 안 들린다. 떨고 있는지,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자신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경기 운영도 달라졌다. 어차피 상대가 초구다보니, 수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공격에만 몰두했다”고 했다. 
 
최근 조명우는 다음달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조명우는 “마지막 국제대회가 2월 터키 월드컵이었다. 3월 독일에서 예정됐던 세계팀선수권대회도 연기됐다. 국제대회가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데, 이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입대 전, 비록 이벤트 대회지만 마지막 국제대회를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대2 온라인 비보이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김헌준과 김홍렬이 비보잉을 펼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코로나19가 스포츠까지 ‘언택트(Untact·비대면)’로 만들었다. 2024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이 유력한 브레이크 댄스는 3월부터 ‘비대면 온라인 배틀’을 열고 있다. 
 
세계랭킹 1위 진조 크루는 5월부터 3차례 국제대회를 제패했는데, 한국팀 중 유일했다. 진조 크루의 이승진 실장은 “유럽, 미국 등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대회가 열린다. 라이브로 동영상을 통해 양팀 댄서가 비보잉을 겨룬다. 화면분할을 통해 DJ와 심사위원도 참여한다. 온라인으로 우리 춤이 전달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