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과 저장시설 기업을 사들이는 데 5일(현지시간) 97억 달러(약 11조1600억원)를 썼다.
상당 기간 침묵한 뒤였다. 늘 버핏은 경제위기 초기에 움직였다. 그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직전 골드먼삭스에 50억 달러(약 5조7500억원)를 베팅했다. 위기 순간 싸게 사서 나중에 비싸게 처분하는 게 그의 투자 공식 가운데 하나였다.
코로나 위기 와중엔 Fed가 버핏의 발목 잡아
미국 천연가스 가격은 2000년 이후 최저, 그런데 천연가스 운송-저장 기업 인수
중국,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 약속..수요-가격 급등할수도
코로나 위기 초기에 항공주 처분해 입방아에 오르다 천연가스 시장에 역발상 투자
실제 Fed의 공격적인 회사채 인수 때문에 실적 전망은 좋지만, 일시적으로 돈줄이 마른 기업이 매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버핏이 자의반타의반 침묵했던 이유다.
20여년만에 다시 입방아 대상이 돼
그런데 버핏의 처분 뒤 미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항공주가 반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버핏이 항공주를 처분한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90년대 이후 세 차례 시장 소외
사실 버핏이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촌평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닷컴열기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전통 가치주를 고집했다.
그 바람에 버크셔해서웨이 주가는 90년대 말 전후 눈에 띄게 하락했다.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버핏이 나이 들어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며 “버크셔해서웨이가 시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버핏은 닷컴 붕괴를 통해 자신의 투자 철학과 판단이 옳았음을 결과적으로 입증했다.
버핏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도 소외를 경험했다. 이번에도 닷컴거품 때와 비슷하게 위기를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찰의 위력을 발휘하며 나중에 비싸게 팔기 위해 ‘싸게 사들이는’ 베팅을 공격적으로 벌였다.
버핏의 투자 역사를 보면, 코로나 위기는 세 번째 소외다. 다만,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승패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는 장기 투자를 한다.
지금 미 천연가스 시장은 위기 중
그런데 요즘 미국 천연가스 시세는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시세만을 보면 천연가스 시장이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미국 난방 연료 가운데 25% 정도다. 시장의 기본적인 크기는 형성돼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중국 변수가 있다. 중국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인 IHS마킷의 이대진 연구위원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미ᆞ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천연가스 수입을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핏은 가격이 천연가스 바닥을 맴돌고 있는 순간 미ᆞ중 무역갈등 변수까지 고려해 베팅한 셈이다.
다만, 버핏은 천연가스 채굴보다는 파이프라인과 저장에 비중을 둔 기업을 인수했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와중에 돈 번 사람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 장사였다는 역사적 교훈을 활용한 듯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