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집 안 파는 청와대 참모, 부동산 정책의 실패 자인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2020.06.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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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 공직자가 다시 입길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조기숙 교수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이 정부 고위 공직자 중 다주택자가 많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다주택 청와대 참모들의 소극적 집 처분 행태에 유감을 표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공직자에게 “수도권 다주택자는 1채를 빼고 집을 팔라”고 권고했다. 당시 시한으로 내걸었던 6개월이 지났지만, 노 실장 지시를 이행한 청와대 참모는 찾기 힘들다. 권고 대상 11명 중 아직 청와대에 남아 있는 6명은 여전히 다주택 상태다. 비서실장 지시에 호응해 다주택을 해소한 사람은 새로 비서관으로 합류한 참모 한 명뿐이다.

고위 공직자 스스로도 못 믿는 대책
국민에게만 믿어 달라니 통하겠나

청와대뿐이 아니다. 재산 공개가 의무화된 고위 공직자 및 공직 유관 단체장 중 3분의 1 정도가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까지 나서 “한 채만 빼고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말이 먹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후보 공천 기준으로 ‘1주택 보유’까지 내걸었지만, 소속 의원 중 43명이 다주택자다. 당 지도부가 요란하게 제안했던 ‘노노(No No) 2주택 국민운동’ 구호가 씁쓸하다.
 
다주택 공직자들의 변명은 다양하다. 시간이 촉박했을 수도 있고, 가격이 안 맞았을 수도 있다. 분양권을 사는 바람에 일시적인 2주택 상태일 수도 있고, 친척 공동 소유라 처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두 배 가까운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 비율은 그 자체로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주택 보유가 결국 이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공직자들 스스로 버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21차례에 이르는 부동산 정책은 각종 세제 및 대출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진보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대출을 꽁꽁 묶는 바람에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사다리마저 빼앗았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6·17 대책에도 약발이 먹히지 않자 정부는 벌써 22번째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집을 팔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효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정책이라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공직자들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저금리에 1100조원이나 되는 부동자금이 풀려 있는 상황에서 땜질식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 정책의 궤도 수정이 없는 한 이런 상황은 시시포스의 도로(徒勞)처럼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