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더는 배역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올까. 81세 노장 배우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주인공 햄릿 왕자의 배역을 맡게 됐다는 소식이 CNN, 가디언 등을 통해 보도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은 26일(현지시간) 자신의 홈페이지에 햄릿 왕자 배역을 맡게 된 소식을 전했다. 맥켈런은 “50년 전 처음 햄릿을 연기하고 다시 한번 배역을 맡게 돼 영광”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간달프' 이안 맥켈런, 햄릿역 캐스팅
성별·인종 장벽 허무는 공연·영화계
코로나 여파로 상영 일자는 미정
셰익스피어의 희극 속 햄릿 왕자는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 등 왕가의 문제 속에 방황하는 청년이다. 정확히 나이가 밝혀진 바는 없지만, 주로 햄릿 왕자는 20~30대 가장 잘 나가는 배우들의 몫이었다.
주간지 타임스에 따르면 1974년 당시 38세였던 영국의 유명 배우 앨버트 피니도 햄릿 왕자 배역을 희망했지만, 햄릿 역할을 맡기에는 나이가 많다며 거절당한 일화도 있다.
맥켈런이 햄릿 왕자 역할에 캐스팅된 것은 최근 몇 년간 연극·영화계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연장선이라고 현지 언론은 평가했다. 최근 공연계에서는 성별의 장벽을 허무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 한창이다. 배역의 성별을 뒤바꾸거나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가며 배역을 맡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영국 런던에서는 여성인 미셸 테리 배우 겸 예술 감독이 햄릿 왕자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종의 장벽도 허물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영국의 정통 연극극단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는 흑인 배우 파파 에시에두를 햄릿 역할에 캐스팅했다. 최근 디즈니는 ‘인어공주’를 실사화하며 흑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인어공주 에리얼 역할로 캐스팅해 피부색의 장벽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햄릿’ 연극의 감독을 맡은 숀 마티아스는 타임스를 통해 “성별과 피부색에 얽매이지 않고 배우들을 뽑고 싶었다”며 “만약 이런 캐스팅이라면 나이의 장벽 역시 허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안 맥켈런보다 누가 더 햄릿 왕자가 겪는 잔혹한 돌팔매와 화살(slings and arrows)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라며 캐스팅의 이유를 설명했다.
◇코로나 여파…연극 시작 날짜는 미정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7월 4일부터 일부 극장의 재개장을 허가했다. 이번 ‘햄릿’이 공연될 로열 윈저 극장은 성명을 통해 리허설을 오는 29일(현지시간) 시작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추후 막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