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밀양 초동초등학교에 마련된 수용소)은 배급을 주지만 적게 주어 배급으로는 견딜 수가 없어 밥을 얻으러 나갔다. 바가지를 들고 남의 집을 가니 조금씩 주었다. 밥을 얻으러 온 사람은 줄이 이어졌다. 방앗간에 가서 등겨를 쓸어 담아와 굶주린 배를 채우거나 산에 가서 산도라지도 캐어 먹고 생멸치도 얻어먹었다.” (신용찬, 당시 13세)
흥남서 피난 온 ‘동춘면옥’ 주인
메밀 못 구해 밀가루 쓴 게 처음
오징어 순대, 함경도 출신의 지혜
미군부대 남은 뼈가 돼지국밥 재료
황해도에서 전남 진도까지 피난을 간 강영봉(당시 19세)씨는 “전쟁을 피해 진도에 들어왔지만, 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으려 해도 흉년이 들어 줄 밥이 없는 상태였다. 배급으로 받은 옥수숫가루는 겨우 허기나 잊을 만큼이었다…공사판 일과 숯 굽는 일을 하였는데 받은 품삯으로 쌀을 사다 먹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서숙쌀(조)이라는 것을 사다가 죽을 끓여 먹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들(미군)이 버린 잔반을 가져다 끓여 먹었으며 감자껍데기 삶아 버리는 것도 가져다 먹었다. 가루우유를 먹다가 코가 막혀 혼이 나기도 하고, 솥에 쪄주면 우둑우둑 깨물어 먹기도 했다. (김희준, 강원도 인제군 당시 12세)”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 음식 중 하나가 부산 돼지국밥이다. 부산에 온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뼈를 이용해 탕국을 만들어 먹으며 시작됐다.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된 부산 서면시장 옆엔 미군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구호물자로 보낸 밀가루는 ‘6·25 푸드’의 바탕이 됐다. 부산 밀면은 함경남도 흥남시에서 냉면집 ‘동춘면옥’을 하던 정한금씨가 1·4 후퇴로 피난촌에서 ‘내호냉면’이라는 음식점을 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전쟁으로 메밀을 구하기 어렵자 밀가루에 전분을 넣어 쫄깃한 면발을 만든 것이다. 당시엔 ‘경상도 냉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지역N문화’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측은 “실제로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회고는 6·25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는 소중한 원천 역사 자료”라며 “이렇게 발굴된 원천콘텐츠가 영화, 소설, 연극 등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