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현충원을 찾았던 주 대표는 충남 아산 현충사(이순신 장군 사당)를 시작으로 8개 이상의 사찰을 옮겨 다니며 잠행 중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 전남 장성 백양사(천진암), 전남 구례 화엄사, 경남 남해 보리암, 경남 하동 쌍계사ㆍ칠불사, 경북 울진 불영사(20일), 충북 보은 법주사(21일), 강원도 사찰(22일) 등에서 머물렀다. 이 기간 이동한 거리만 1500㎞ 이상이다. ‘유발승(머리를 깎지 않은 승려)’으로 불리는 주 대표는 ‘자우’라는 법명이 있을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다.
과거에도 칩거를 정치 수단으로 삼은 정치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주 대표처럼 전국의 사찰을 돌며 잠행한 경우는 드물었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독주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비우고 해법을 찾으려는 주 대표의 고민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최근 자신의 카카오톡 소개 문구를 ‘인욕(忍辱ㆍ마음을 가라앉혀 욕된 것을 참음), 하심(下心ㆍ자기를 낮추는 마음), 청정(淸淨ㆍ허물과 번뇌에서 벗어남)’이라고 적었다.
주 대표 앞에는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하거나, 7개 상임위를 가져가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한다면, 통합당은 상임위원 명단을 새로 짠 뒤 국회로 복귀하게 된다. 국회 안에서 의원들의 전문성과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역공 전략’이다. 이 경우 주 대표의 복귀 시점은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이 가시화되는 본회의 직전(25일)이나, 실제 독식이 이뤄진 뒤(26일)일 가능성이 크다. 한 통합당 초선 의원은 “이래야 주 대표에게 ‘독주에 맞선다’는 복귀 명분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최근 “18개 상임위를 다 줘도 된다”고 발언한 것은 주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통합당이 7개 상임위를 받고 ‘11대 7’의 구도를 만드는 시나리오도 아직까진 유효하다. 이 경우 법제사법위원장의 임기를 2년씩 쪼개는 방안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의 전략에 밀렸다”는 당내 불만이 속출할 수 있다. 한 통합당 인사는 “주 대표의 잠행이 오로지 민주당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며 “앞으로는 민주당과 대치하고, 뒤로는 당의 불만까지 추슬러야 하는 데 대한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차 원 구성 압박에 나섰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망부석도 아니고 더 얼마만큼 기다려야 하느냐”며 “통합당이 오늘까지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고 국회 정상화에 협조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찾아 주 대표와 회동했다. 민주당 측은 “김 원내대표가 오후 4시 45분쯤 주 대표를 만나 국회 정상화를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손국희ㆍ윤정민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