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 크고 둥근 태극선 모양의 ‘방구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摺) 부채’로 나뉜다. 그 중 접부채인 합죽선(合竹扇)은 왕 대나무의 겉대를 맞붙여서 만든다. 대나무 속대만 사용하는 중국·일본의 ‘접선’보다 튼튼해서 고려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접목돼 발전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부챗살 수에도 제한을 뒀다. 왕실 직계만이 부챗살이 50개인 ‘오십살백접선’을 쓸 수 있었고 사대부는 사십선, 이하 중인과 상민은 그보다 살이 적은 부채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합죽선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 150번은 손이 가야하고 시간도 1주일 이상 걸리죠.”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 선자청을 만들고 2부 6방의 관청 장인들이 분업으로 부채를 만들었다. 골선부 초조방(대나무를 잘라 얇게 깎아내는 곳), 정련방(대나무를 붙여 부채 형태를 만드는 곳), 수장부 낙죽방(속살과 겉대에 박쥐·매화 등을 새겨 장식을 하는 곳), 광방(대나무를 매끄럽게 광내는 곳), 도배방(부챗살에 미리 접어놓은 한지를 붙이는 곳), 사북방(장식용 고리로 부채 머리를 고정한 후 최종 마무리를 하는 곳) 등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공정을 김동식 장인이 혼자 한다.
“사라져 가는 기술이기 때문에 내가 안 지키면 아예 없어져 버리잖아요.”
합죽선은 좋은 대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대 껍질의 표면이 깔끔하고 윤기가 나야 상품이죠. 고급 합죽선을 만들려면 추미(대나무 마디 사이) 길이가 48cm는 돼야 하는데 그런 대나무를 만나려면 몇 년씩 걸리기도 하죠.”
“일본과 중국의 부채 기술자들이 배워보겠다고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다들 ‘이건 쉽게 따라할 일이 아니다’라며 그냥 돌아갔죠.”
대나무 가시는 살에 한 번 박히면 찾기도 빼기도 힘들단다. 김 장인의 손가락 끝이 퉁퉁 부어 있는 이유다.
대나무 속껍질을 다 깎아내고 겉껍질 두 장씩을 붙일 때 풀은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어교’와 동물 가죽, 힘줄, 뼈를 고아 만든 ‘아교’를 섞어 사용한다.
풀로 붙인 부챗살을 단단히 묶어 일주일 정도 말린 다음, 손잡이 부분인 ‘등’으로 사용할 재료를 깎고 다듬는다. 부챗살에 풀을 입힌 후 미리 재단해서 접어놓은 한지를 붙이고, 손잡이에 장식인 사복을 박아야 합죽선 한 자루가 겨우 완성된다. 오로지 전통방식 그대로 수작업으로만 이뤄진 공정들이다. 대나무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에 기계사용은 꿈도 꾸지 못한다.
김 장인은 기능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중시한다. 합죽선은 선이 살아 있도록 살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채 등과 변죽에 어떤 문양을 새기는지, 어떤 재료를 썼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미학이 표현된다.
합죽선 ‘등’은 흑단나무, 먹감나무, 박달나무 등을 사용하거나 우족(소뼈) 또는 상아를 사용한다. 그런데 요즘 상아는 아예 못 구하고, 우족도 우시장 상인들이 작게 뼈를 조각내서 팔기 때문에 역시 구하기 쉽지 않다.
신분에 따라 부챗살 숫자도 달랐던 조선
대나무 겉대 맞붙인 '합죽선'은 몇 백년도 보존
대 속대만 사용한 일본·중국 부채보다 정교함
영화 '군도' 속 강동원의 부채도 김 장인의 작품
“촬영에 꼭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줬더니 망가져서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보니 배우가 그걸 들고 싸움도 하더라고요. 나한테는 작품인데 가볍게 대한 게 아쉽더라고요.”
김 장인은 “이왕 사는 부채라면 좋은 걸 사라”고 했다. 손때가 묻을수록 더 멋있고 사용할 때도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싸구려 부채를 사서 쓰레기를 양산할 필요가 없어요. 멋지게 살려면 멋스러운 소품도 필요하잖아요. 만졌을 때 기분 좋고, 펼쳤을 때 어디선가 기분 좋은 바람을 몰고 와 줄 것 같은 부채가 합죽선이죠.”
전주=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솔루나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