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물건인데, 동네 이웃께 당근합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엔 매일 이런 글이 30만개 이상 올라온다. '당근하다'는 당근마켓에 중고물건을 내놓는다는 뜻. 당근마켓은 서비스 시작 만 5년 만에 '당근 하는 사람들' 800만명(6월 월 사용자 기준)이 찾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쇼핑 앱 카테고리에선 쿠팡(1349만명)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사용자가 많다.
이런 당근마켓을 지켜본 벤처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우리동네 네이버'로 클 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약 20조원 규모의 국내 중고거래 시장을 뜨겁게 달군 당근마켓의 비결은 뭘까. '당신 근처의 마켓' 당근마켓에서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이 일하는 젊은 직원들을 만나 당근마켓의 성공 디테일을 물어봤다. 고객대응팀(CS) 최현수(32) 매니저와 사업팀의 권순우(31) 매니저다.
천천히 다진 동네, 폭발적 성장
당근마켓 직원이 말하는 '성공 디테일'
중고거래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로
최현수 매니저는 "많은 사용자들이 분 단위로 추가되는 물건들을 구경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며 "물건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동네 이웃의 일상을 본다는 점에서 소셜 콘텐트의 속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계속 당근마켓을 들여다본다는 것. 권순우 매니저는 "지역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물건 구경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이 되는 것처럼 당근마켓이 모바일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이 이런 방향을 잡는 데는 지역 기반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맘카페' 영향도 있었다. 김재현 대표는 "당근 마켓 초기 목표는 맘카페 분따(분당엄마 따라잡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매니저는 "온라인 맘카페에선 육아부터 약국, 병원, 맛집, 세탁소 등 각종 정보가 공유되고 물품거래도 활발한 편"이라며 "맘카페의 이런 장점은 참고하되, 인터넷 카페의 한계를 넘어 '동네 기반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근마켓 사용자 10명 중 6명이 여성, 특히 핵심 타깃인 30~40대 여성 사용자가 전체 사용자의 38%를 차지한다.
최근엔 모바일 앱에 서툰 45세 이상 사용자(5월 기준 전체의 28%)도 늘고 있다. 최현수 매니저는 "당사자 간 직거래가 기본인 당근마켓에선 공인인증서를 깔 필요도 없고, 신용카드를 등록할 필요도 없다"며 "이런 편리함 덕분에 '우리 엄마도 쓸 수 있는 당근마켓'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고객 불만엔 '당근마켓식' 메이커 문화
그렇다면 '거래 가능 지역이 너무 좁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당근마켓은 어떻게 해결할까. 최 매니저는 "당근 사용자가 급증해 서울에선 1km 이내에서도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다"며 "거래한 사람들과 동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쌓이는 플랫폼을 지향하기에, 범위는 오히려 조금씩 좁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상품 보단, 더 신뢰할만한 사람과 직거래하는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말이다.
권 매니저도 "강남 3구에선 검색 키워드 상위에 샤넬·루이뷔통 등이 오르고, 제주도에선 캠핑·낚시·오토바이 같은 키워드들이 많다"며 "지역별로 특색 있는 거래가 나오고 있고, 우리는 그런 특색을 커뮤니티로 발전시켜가겠다"고 말했다.
최근엔 당근마켓에 개인이 아닌 전문 '꾼'(중고물건 판매업자)이 올라와 커뮤니티를 흐린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현수 매니저는 "개인 간 거래만 허용하는 것이 당근 마켓의 원칙"이라며 "판매업자를 100% 걸러낼 수는 없지만, 시세차익을 노린 사재기나 되팔기 등은 인공지능(AI)을 적용해 1차로 걸러내고 수작업으로 이용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최 매니저는 "기업 성장에서 배우는 점도 많지만, 당근 마켓이 지향하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는 방향성이 더 큰 꿈을 꾸게 한다"고 말했다. 꿈을 좇는다는 스타트업의 현실적인 일상과 모순을 그려 인기를 끈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장류진 작가)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당근마켓이 소설의 일부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다. 권 매니저는 "소설이 스타트업의 현실을 잘 다뤘지만, 당근마켓은 '따뜻한'이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며 "현실의 당근마켓이 훨씬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