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로비로 번졌지만···‘김회장 연결고리’ 잡은 檢의 숙제

중앙일보

입력 2020.06.22 06:00

수정 2020.06.22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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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정치권 인사를 연결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이모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됐다. 라임 사태가 1조6000억원대 금융 사기에서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전 회장에게서 돈을 받아 정치권에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뇌물 수수·로비 사건’으로 규정하기까지 밝혀야 할 숙제가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품·로비 '직접 증거' 나와야  

이모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19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대표-정치권 인사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본격적으로 라임 비리 의혹이 불거지기 전 운전기사 등을 시켜 이 대표에게 현금 수천만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돈으로 정치권 인사들에게 라임 구명 로비를 하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반면 이 대표는 “과거 김 전 회장에게 빌려준 돈이 1억원 이상 있었는데, 그 돈을 일부 받은 것일 뿐”이라며 “자녀 학비 등 생활비로 썼다”고 주장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김 전 회장에게 받은 돈을 이 대표가 정치권 인사에게 전달하거나, 혹은 전달하려 시도했다는 정황을 포착해야 한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과거 정치권 로비 사건을 보면 국회 의원회관 출입 기록이나 수행비서·운전기사들의 목격 진술, 만남이 이뤄진 장소의 영수증 등을 증거로 사건을 구성했다”며 “줬다는 사람은 있지만 받았다는 사람은 없는 만큼, 이 대표가 부인한다면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김 전 회장이 직접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정치권 인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A의원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 B씨, 민주당 소속 부산 지역 총선 후보자로 출마했던 C씨다. 김 전 회장은 A의원에게 총선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2016년 최소 수천만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지난해 ‘라임 사태로 인해 투자가 막힌 스타모빌리티를 도와달라’며 B씨를 만나려 한 이 대표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도 진술했으며, C씨에게도 최소 수천만원의 정치자금을 대줬다고 주장했다. A의원과 B·C씨는 모두 “김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직무 연관성·대가성 입증해야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4월 18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돈을 전달했다고 해도 뇌물 혐의를 적용하려면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 김 전 회장의 돈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이 김 전 회장을 위해 무언가 해 줬다는 사실이 나와야 한다. 앞서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청와대 행정관 김모씨는 김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금융감독원의 라임 감사 일정 등을 미리 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뇌물 대가성을 어느 정도 입증한 경우다.  
 
하지만 현재까지 언급된 정·관계 인사들이 라임의 비약적 성장 혹은 라임 사태의 무마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뇌물죄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있어야 성립한다. 아직은 돈이 전달됐다는 주장만 있고 그로 인해 김 전 회장이 받은 ‘혜택’이 드러나지 않았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미래에 기대되는 이익을 위해 뇌물을 전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최근 대법원은 뇌물공여자의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며 “단순히 정치 인맥 ‘관리’ 차원으로 제공된 금품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을 적용할 수는 있어도 뇌물죄로 규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회장님' 로비 수사는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4월 24일 경찰 조사를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호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회장의 비리 의혹이 제기될수록 금융투자 업계에선 “라임 사태의 다른 ‘회장님’들은 얼마나 더 심하겠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전 회장보다 더 많은 라임 자금을 횡령하고 도주 중인 메트로폴리탄 김모 회장, 에스모 실소유주 이모 회장 등이다. 하지만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관련 수사가 답보 중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라임 사태 다른 ‘회장님’에 비하면 김 전 회장은 ‘피라미 수준’”이라며 “라임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가 실제로 있었다면 이들이 한 로비가 훨씬 더 규모가 크고 방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