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됐던 한국늑대가 돌아왔다…죽기 직전 구한 새끼늑대들

중앙일보

입력 2020.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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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오월드 어린이동물원의 새끼늑대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 김정연 기자

강아지 6마리? 아닙니다. 태어난 지 두 달을 조금 넘긴 새끼늑대 6마리입니다.

 
지난 4월 대전 오월드에서 태어난 새끼늑대들입니다. 이 늑대들이 무사히 자라면, 1997년 서울대공원에 있던 늑대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복원에 성공한 ‘한국늑대’가 됩니다.

[애니띵]새끼늑대 6마리를 만나다

4월 2일에 태어난 ‘예서’, 4월 17일 태어난 ‘나미’ ‘나리’ ‘남작’ 삼 남매, ‘호수’ ‘수지’가 남매입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 같은 새끼늑대…이유식 먹어

낮잠을 자는 새끼늑대들. 연합뉴스

새끼 늑대는 거의 강아지와 똑같습니다. 공격성은 없고, 하루에 밥 먹고 노는 6시간 남짓을 빼고는 대부분 자는 신생아 같은 생활을 합니다.


 
지금은 아직 이가 다 나지 않아 이유식을 먹고 지냅니다. 다진 닭고기 2, 소고기 1 비율에 강아지 분유를 섞어 되직하게 개서 주는데, 6마리가 하루에 3㎏ 정도를 먹습니다.
 
언뜻 보면 6마리가 다 똑같이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털 색도 다르고 눈 색도 다릅니다. 덩치도 꽤 차이가 나서, 가장 큰 ‘예서’는 7㎏, 가장 작은 ‘수지’는 3㎏밖에 되지 않습니다.

새끼늑대 6마리는 몸집, 털 색, 눈 색이 각각 달라 구별할 수 있다. 왕준열 기자

  

멸종한 한국늑대, 24년 만에 복원?

울타리에 묶어놓은 밧줄을 물어뜯으며 노는 새끼늑대들. 김정연 기자

늑대(Canis lupus)는 북반구 전체에 서식하는 개과의 동물입니다. 부탄·인도·네팔·파키스탄 등지에 서식하는 늑대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지만,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일대에 사는 늑대(Canis lupus chanco)는 너무 많아서 주기적으로 포획할 정도로 흔한 종입니다. 
 
한국늑대(Canis lupus coreanus)는 러시아 일대의 늑대와 유전자형이 거의 같고, '한국에 사는' 늑대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1997년 서울대공원에 있던 늑대가 폐사한 뒤 야생 상태에선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동물입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대전 오월드(당시 대전동물원)가 ‘한국늑대 복원’을 목표로 러시아에서 늑대 7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이 늑대들 사이에서 2011~2015년까지 태어난 ‘2세대 늑대’는 14마리입니다. 1세대가 외국인이라면, 2세대부터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은 ‘한국 늑대’인 셈이죠. 
  

5년간 죽어나간 새끼들…6개월 준비한 ‘구출 작전’

지난 5월 6일 사육사들이 구출하러 들어간 늑대굴 속의 새끼늑대 3마리. 당시는 태어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아 지금보다 훨씬 더 덩치가 작았다. 대전 오월드 제공

이번에 태어난 새끼들은 3세대 늑대입니다. 처음으로 한국늑대가 낳은 한국늑대들인 셈이죠. 2015년부터 해마다 새끼늑대가 태어나긴 했지만,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야생에서 파보바이러스나 심장사상충, 진드기 등으로 병에 걸려 죽거나, 부모 늑대와 경쟁 관계에 있는 늑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박중상 사육사는 “늑대는 야생성이 강해서 ‘새끼를 기를 환경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약한 새끼를 죽이기도 하고, 세력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에 경쟁자의 새끼를 물어 죽이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사육사들은 부모 늑대가 자연 상태에서 새끼늑대를 키우도록 내버려 두는 ‘자연 포육’으로는 3세대 늑대를 살려낼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새끼늑대 구출 작전’을 짰습니다. 
 
박 사육사는 "늑대의 평균 수명이 11~12년인데, 지금 대부분 늑대가 2011, 2012년생이라 꽤 노령화됐다”며 “‘올해는 꼭 새끼들을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결정하고, 경험이 많은 사육사들과 상의하면서 꽤 오래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목 물려 숨 못 쉬다 "켁!" 하고 살아나

지난 10일 점심을 먹은 뒤 낮잠을 자고 있는 새끼늑대 5마리와 아직 잠들지 않은 한 마리. 보초를 서듯 앞에 앉아 있는 늑대가 가장 큰 '예서'다. 김정연 기자

5마리는 5월 6일, 한 마리는 4월 26일에 늑대 사파리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일찍 데리고 나온 ‘예서’는 바로 전날 형제들이 경쟁 늑대에게 물려 죽었는데, 겨우 살아남은 운 좋은 아이입니다.

 
박중상 사육사는 “어미가 먹이를 먹으러 나온 사이에 경쟁상대가 굴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새끼 두 마리를 물고 나와서 죽였다”며 “그 날은 굴속을 뒤져봐도 남은 새끼늑대를 못 찾았는데, 그다음 날 또 경쟁 늑대가 물고 나왔길래 사육사 두 명이 뛰어들어가서 구해왔다”고 전했습니다. 박 사육사는 “목을 물고 나와서 새끼가 숨을 못 쉬고 있다가, 켁! 하면서 숨을 쉬기더라”며 “마사지도 해주고 온도도 맞춰주면서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나머지 5마리도 사육사 4명이 함께 들어가 굴에서 꺼내왔습니다. 새끼를 분리하려고 들면 어마, 아빠 늑대 모두 공격성이 강하기 때문에, 3명이 주변을 지켜 서고 한 사람이 굴에 들어가서 새끼늑대를 꺼내옵니다. 늑대는 쇠 부딪히는 소리, 화약 소리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쇠막대로 소리를 내면서 겁을 주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요. 사람이 우르르 들어가면 알아서 먼저 도망가기도 합니다.
  

코로나 덕? “관람객 적어 스트레스 덜 받아”

촬영을 위해 설치한 카메라의 삼각대를 신기해하며 물어뜯으려 하는 새끼늑대들. 김정연 기자

올해는 코로나 19로 관람객이 적어, 늑대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도 운이 좋았습니다. 박 사육사는 “늑대들 입장에서는 동물원이 조용해서 ‘내 영역이 평화롭다’고 느꼈을 수 있다”며 “다른 해보다 새끼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아서 꺼내올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사육사들이 새끼를 데려간 이후 어미 늑대는 새끼를 찾느라 이틀 정도 굴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곧 잊어버리고 평소대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리에서 떼어내 사람이 키운 늑대도 어른 늑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야생성이 나온다고 합니다. 유전적으로 개와 거의 똑같지만, 야생성이 뚜렷한 게 큰 차이입니다.  
 
이번에 데려온 6마리 새끼늑대는 28일까지 어린이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이후 늑대 사파리 한 쪽에 분리된 칸을 만들어 따로 살게 됩니다. 1년 반 정도 자라면 어른 늑대와 거의 비슷한 크기가 된다고 하네요.
 

“얘네들은 살려야지…. 라는 생각밖에 못 했어요”

 
늑대들을 가장 가까이서 봐 온 박중상 사육사의 말입니다. 사육사들의 바람대로, 새끼늑대 6마리는 늠름한 어른 늑대로 자랄 수 있겠죠?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영상=왕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