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전 그의 의미심장 한마디…김연철 떠나자 임종석이 뜬다

중앙일보

입력 2020.06.18 18:41

수정 2020.06.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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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레노스블랑쉬에서 열린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회'에 참석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또다시 화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전날(17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뒤 후임자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다. 청와대를 떠난 지 1년 5개월,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통일운동)로 돌아간다”며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7개월 만이다.
 
임 전 실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건 정치인 출신 장관이 과감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주길 바라는 여권 주류의 기류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난달 30일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와 대담하면서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문제에서의 어떤 변화와 함께 정치적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꼭 제도정치여야 한다면 솔직하게 설명드리고 그걸 할 겁니다.”(『창작과 비평 188호』)
 

KBS가 지난 17일 휴전선 인근 비행금지선(NFL)에 인접한 파주시 문산읍의 상공에서 폭파 후 뼈대만 남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모습을 촬영해 보도했다.(KBS 1TV 캡처) [뉴스1]

마침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대남도발을 감행하면서 ‘남북문제에서의 어떤 변화’가 생겼다. 지난 4·15 총선 때 지원 유세로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임 전 실장의 ‘정치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친문 성향의 한 재선의원은 “실행력 있는 통일부 장관이 들어설 때다. 그런 면에서 임 전 실장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고, 안보통인 한 초선의원은 “남북관계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며 임 전 실장을 적임자로 꼽았다.
 
임 전 실장과 함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그룹 핵심이었던 이인영·우상호 민주당 의원이나, 임 전 실장의 오랜 친구이자 통일부 장관(이재정) 정책보좌관 출신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여권에선 임 전 실장을 더 유력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 북한의 강경 입장을 대변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그의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카운터파트였다. 실제 임 전 실장은 지난해 초 김연철 장관 임명 때도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8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서울 호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386세대로 불리는 우리에게 남북통일은 언제 어디에서나 심장을 뛰게 하는 인생의 이정표이자, 동시에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라는 임 전 실장의 말처럼, 통일운동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한양대 총학생회장) 시절인 1989년 당시 전대협 구성원이던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주도했다. 임 전 의원의 불법 방북을 기획한 혐의로 임 전 실장은 당시 3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수배·수감 생활 중 동유럽 몰락과 독일 통일 소식을 접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같은 분단국의 청년이건만 나는 통일운동을 하다가 쫓기는 신세였고, 그 친구들은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을 손수 부숴내고 있었다. 당시로선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장산곶매, 평화로 날다』)
 
임 전 실장은 출소 후 시민운동계에서 활동하다 2000년 16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임 전 실장은 17대 국회까지 재선 의원을 지내며 남북교류협력법의 첫 개정과 남북관계발전법·개성공단지원법 제정을 주도했다. 남북 간 주민접촉을 승인제가 아닌 신고제로 하고, 남북 간 거래를 민족 내부거래로 보는 등의 내용이 이때 남북교류협력법에 명시됐다.
 

1990년 2월 26일 임종석 전대협 의장이 첫 공판을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며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불법 방북했던 임수경(당시 대학생) 전 민주당 의원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월경하고 있다. [중앙포토]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철학은 자서전에 잘 나타나 있다.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는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실상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변수가 북한이고, 우리 입장에서 남북관계는 이 변수를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장산곶매, 평화로 날다』) 
 
임 전 실장은 이남주 교수와 대담에서도 “유엔 제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한다. 제재의 판정 기준을 월경(越境)이 아닌 이전(移轉)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남북 간 적극적인 교류협력 추진을 주장했다.
 

2018년 9월 6일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평양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임 전 실장의 주변에선 그의 입각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임 전 실장의 한 측근은 1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실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향후에도 부름이 있을 거라고 보진 않는다”며 “임 전 실장은 남북관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주변국의 눈치를 살피거나 야당의 견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공적 영역보다 당분간 민간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것이란 뜻이다. 
 
임 전 실장은 실제 지난 1일 자신이 2004년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에 재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다. 이미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가 부총리급이 아닌 장관직을 다시 맡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2018년 남북관계의 훈풍을 주도했던 임 전 실장이지만,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자칫 그에게 통일부 장관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전대협 의장 임종석(오른쪽)군과 평양축전 준비위원장 전문환(가운데)군이 1989년 6월 29일 집회에 모습을 나타내 통일 선봉대로부터 건네받은 한라산의 물과 돌멩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그가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 피의자로 검찰 수사 받고 있는 점도 변수다. 수사·재판과 별개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도 부담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