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미래와 한국의 길
트럼프는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고 관세전쟁으로 기선을 잡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2008년 32.6%에서 2018년 19.5%로 축소될 만큼 내수시장이 커졌다. 미국은 무역 전쟁으로는 승산이 보이지 않자 동맹국들을 동원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구축하려고 한다. 중국을 배제한 민주무역동맹기구(DATO)도 거론된다. 급기야 크림반도 점령으로 축출된 러시아를 다시 선진 7개국(G7) 회담에 초청했다.
미·중 갈등 속 마찰 최소화하려면 분명한 원칙 세워야
강대국 상대할 때 최후의 방패는 행동의 정당성 확보
우리 원칙은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 등 보편적 가치
미·중과의 마찰 회피에 급급하다간 나라가 왜소해져
북핵·한반도 문제도 중재자 아닌 당사자 자격으로 임해야
중국판 먼로독트린 진행 중
그래도 중국의 미국 넘어서기는 갈 길이 멀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장세 하락으로 2050년에 가서야 미국과 대등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화 바람이 잦아들어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홍콩 사태가 보여주듯 많은 나라가 중국과 가치 체계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런 전망을 강화한다.
역사가들은 반도체 전쟁이 미·중 경쟁의 미래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냉전 시절 미·소 핵 경쟁 양상과 비교한다. 처음에는 미국이 앞섰지만 결국은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승자 없이 수십 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동맹을 돈으로 치환한다. 트럼프 이후에도 그 기류는 계속될 것이다. 핵 없는 한국이 북한 앞에서 움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세상은 다 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재래 군사력으로 북한을 압도할 수 있다고 애써 자위하려고 한다. 실제로는 안보 약점 때문에 미국이 방위비 분담 개념을 군사 보호 비용으로 대놓고 바꿔도 대책이 없다.
중국은 어떤가. 수 양제(612년)와 당 태종(644년)은 “고구려 경역이 본래 중국의 군현”이라고 주장하면서 침략했다. 1400년이 지난 2017년 시진핑은 “역사적으로 조선반도는 중국 땅”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줄기찬 역사 인식이다. 그런 중국이 일당 독재 체제의 우위를 내세우면서 중국적 질서 구축에 나섰다. 핵으로 핵을 가진 북한은 껴안으면서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두고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교묘한 징벌을 가한다. 한국은 해외 최대 미군기지를 중국 코앞에 두면서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저질환 환자처럼 미·중 갈등 바이러스에 가장 위험하게 노출된 상태에서 미·중 이익 사이에 여러 결정을 해야 한다.
길고 험난한 길을 가는 한국 앞에는 4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첫째, 입장 표명과 결정을 최대한 미루면서 상황에 따라 입장을 조정한다. 둘째, 동맹국 미국의 입장을 따른다. 셋째, 경제가 밀접한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 넷째,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표방하고 이슈별로 그에 부합하게 결정한다.
특정 세력 아닌 가치에 기반을 둬야
이런 원칙 고수는 상대의 기대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전쟁에는 자유무역이,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화웨이 장비 도입은 군사 동맹 운용과의 양립 여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원칙이라는 깃발을 올리는 행위인 입장 표명과 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냐 사이에서 탄력성이 요구된다. 상황에 휩쓸려 그때그때 입장을 달리하며 미·중과의 마찰 회피에 급급하면 나라가 왜소해지고 결국은 길도 잃는다.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를 시작으로 북한이 벌이는 대남 인질극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2017년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을 배경으로 한 위협과 트럼프의 ‘위협을 통한 승리 전술’이 충돌했다. 우리 정부는 급한 나머지 자신의 위치와 원칙 설정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착오를 범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중재자를 자처한 것이다.
어느새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으로 매겨졌다. “술 석 잔이거나 뺨 석 대”라는 중매꾼 속담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트럼프는 한국을 탓하고, 김정은은 빚 독촉하듯 서울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누구도 당사자에게는 할 수 없는 태도다.
트럼프와 폼페이오가 토로해온 것처럼 북핵 해결은 중국의 협조 없이는 진전이 어렵다. 그런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를 두고 오래 다툴 기세다. 우리 정부가 지금이라도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자기 깃발을 들고 북·미·중을 상대하는 장기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미국 “중국식 독재 모델 수출” vs 중국 “국제사회 책임 다해”
과거 미국의 적대국인 독일·일본·소련과 달리 중국은 막강한 인구·영토·자원에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반어법적 체제로 미국에 도전한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제대로 샅바도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할 때 중국이 정치·경제적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 일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화하면서 ‘정보기술로 통제하는 독재 모델’을 수출하면서 중국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 됐다고 판단한다(2020년 5월 백악관의 ‘중국 전략보고서’).
특히 중국이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 승리를 통한 인류 공동운명체 건설’이라는 구호로 미국적 가치에 정면 도전하는 것을 주시한다. 아울러 국가 주도 산업과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세계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한편, 화웨이의 5G 같은 첨단 기술 장비로 미국과 동맹국의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려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아직 대내적으로 민생과 빈곤 퇴치에 집중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개방과 기존 국제질서 안정을 추구하는 현상 유지 국가임을 강조한다(2020년 5월 리커창 총리의 전인대 보고).
중국은 2000~2018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0개 중 182개에 찬성했을 만큼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내세운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중 수출이 5배 이상 증가할 만큼 호혜적 교역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2014년 지적재산권재판소가 설치된 뒤 2015년에만도 외국 기업이 63건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미국이 국제금융통신망(SWIFT)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같은 기업 기술망을 통해 전 세계 정보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은 미국이 이미 하는 일을 중국도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할 때 중국이 정치·경제적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 일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화하면서 ‘정보기술로 통제하는 독재 모델’을 수출하면서 중국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 됐다고 판단한다(2020년 5월 백악관의 ‘중국 전략보고서’).
특히 중국이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 승리를 통한 인류 공동운명체 건설’이라는 구호로 미국적 가치에 정면 도전하는 것을 주시한다. 아울러 국가 주도 산업과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세계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한편, 화웨이의 5G 같은 첨단 기술 장비로 미국과 동맹국의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려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아직 대내적으로 민생과 빈곤 퇴치에 집중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개방과 기존 국제질서 안정을 추구하는 현상 유지 국가임을 강조한다(2020년 5월 리커창 총리의 전인대 보고).
중국은 2000~2018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0개 중 182개에 찬성했을 만큼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내세운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중 수출이 5배 이상 증가할 만큼 호혜적 교역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2014년 지적재산권재판소가 설치된 뒤 2015년에만도 외국 기업이 63건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미국이 국제금융통신망(SWIFT)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같은 기업 기술망을 통해 전 세계 정보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은 미국이 이미 하는 일을 중국도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