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중학동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 회의실에서 김정수(68)씨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코딩 프로그램 '엠블록'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촬영 방향은 할아버지(그랜파)가 가르쳐주는 친절하고 쉬운 코딩 수업이다. 김 씨는 오전부터 7시간 넘게 어린이를 위한 강의 영상을 촬영했다. 김씨는 강의에서 코딩의 일종인 아두이노 키트로 깜빡이는 무드등을 완성했다.
김 씨가 강사로 나선 것은 한국 MS와 SK텔레콤이 함께 제작하는 '무드등 만들기 코딩교육' 강의를 위해서다. 아이들이 강의를 보면서 코딩을 따라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수업 목적이다. 이 강의는 다음 달 1일 SK텔레콤 T월드 홈페이지에서 공개된다.
김 씨가 코딩을 배운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건강상 이유로 개인 사업을 접었던 김 씨는 집 근처 우리마포복지관을 지나가다 복지관에서 개설한 코딩 수업을 발견했다. 우리마포복지관은 2016년부터 한국 MS와 협업해 초급·중급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딩은 전문가나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복지관 코딩 수업은 이미 만석이었다. 김 씨는 수업 첫날 강사와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김 씨는 매주 1회 두시간씩 비슷한 연배의 60~70대 동기 10여명과 함께 코딩을 배웠다. 김 씨는 "매번 게임하듯이 진행되는 수업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며 "텍스트 코딩이 아닌 블록 코딩 정도는 저 같은 '젊은 실버' 외에 70·80세대까지도 배울 수준"이라고 말했다.
계속 배우다 보니 김 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손주들에게도 코딩을 알려줄 수 있게 됐다. 코딩을 활용한 보드게임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김 씨는 "아이들과 코딩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1년간 코딩을 배운 그는 이제 코딩 선생님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마포복지관은 지난해 김 씨 등 코딩 중급반 수강생들이 참여하는 '코딩봉사단'을 만들었다. 복지관이 참여하는 지역 축제 때는 코딩봉사단이 아이들에게 코딩을 직접 가르쳤다.
강사로 나선 김 씨는 이날 촬영을 위해 2주 동안 연습했다고 한다. 김 씨 손에는 B4 용지 넉 장 양면에 글씨가 빼곡히 적힌 대본이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기보다는 나도 같이 배우면서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강사로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딩 교육 대열에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의 김 씨가 합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딩 제대로 하는 건 전문적인 프로그래머가 해야 하죠. 그분들은 코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거고요. 저 같은 실버 세대나 일반인들에게 코딩은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산수를 배워서 시장에 가서 계산도 하고 하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것이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코딩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김 씨는 4차산업 혁명을 '4차 생활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모든 게 다 연결이 되는데, 이 변화에 따라가는 게 벅찬 세상이 됐지 않냐"며 "많은 사람에게 이 변화에 적응·숙달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같은 실버 세대는 아날로그 사회에 살아왔기 때문에 4차산업혁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며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데다 많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다.
김 씨는 최근 드론과 관련한 코딩을 공부 중이다. 텍스트 코딩으로 드론을 조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는 "좀 더 전문적으로 교육받아 '드론 프로그래밍'을 계속 알아가고 싶다"며 "앞으로는 나같이 코딩에 관심 많은 실버세대가 모이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