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김앤장에 위안부 합의 귀띔한 정황…檢, 메모 공개

중앙일보

입력 2020.06.12 20:13

수정 2020.06.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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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입구 모습. 김앤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서 일본 전범기업 측 변호를 대리했다. 뉴스1

외교부가 지난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에 알려준 정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검찰은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서 김앤장 송무책임자인 한상호 변호사의 자필 메모를 증거로 제시했다.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독대를 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12월 28일자 자신의 메모에 김앤장 고문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에게 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적었다.  
 
메모에는 날짜와 유 전 장관의 이름 아래로 ‘12월 27일 윤 장관과 만찬. 이미 조율 종료. 다만 1. 윤장관, 국내에 설명 곤란 2. 야치 국장, 아베에 보고 못 해’라는 내용이 적혔다. 그 아래로는 ‘어제 국장회의. 협의 성립. 오늘 장관 확인’이라고 쓰였다. ‘이슈’라는 소제목 아래엔 ‘1. 책임 인정. 법적 책임 / 사죄+정부 보상 2. 사죄. 동의 3. 보상. 한국 재단설립. 일본정부 예산으로 10억엔’ 등의 항목이 등장한다. 또 ‘외교장관 회의 후 발표. 양 정상 전화회의. 정치적 결단. 소녀상 관련 단체 협의 해결 노력. 대외적 이미지. 미국의 협조. 대일 압력. 힐러리 당선 가능성 70%’ 등의 설명도 적혔다.  


내용을 종합하면 유 전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전날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만찬을 하면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조율이 끝났다’는 이야기와 관련 설명을 듣고 이를 한 변호사에게 알려줘 이를 메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메모에 등장하는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 등의 내용은 바로 다음날 발표될 위안부 합의의 주요 내용으로, 이는 윤 전 장관이 김앤장 측에 알려줬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판 자제, 소녀상 철거’ 등 민감한 내용까지 알려준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원 수뇌부가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강제징용 소송의 상고심 결론을 뒤집거나 심리를 고의로 지연시켰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 한 변호사를 여러 차례 집무실 등으로 불러 소송 상황 등을 알려주고 향후 진행을 논의했다고 보고있다.  
 
한일 위안부 협상은 강제징용 소송 심리가 미뤄지던 중에 타결됐다. 검찰은 타결 이후인 2016년 4∼5월께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로부터 ‘6∼7월이면 일본이 약속대로 돈을 보낼 예정’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뒤 본격적으로 전범기업 상고심에 정부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에 착수했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날 검찰이 공개한 한 변호사의 메모 내용에는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이전인 2015년 11∼12월에도 정부 측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나 ‘한일 관계’ 등을 이유로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늦추려 한 정황이 담겼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한 변호사의 메모 내용은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지, 아니면 한 변호사 개인의 생각이나 계획인지 불분명하다”며 한 변호사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섣불리 해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메모의 일관된 형식을 보면 한 변호사가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