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에 찾은 가족의 문전박대… 친생자소송 첫 승소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6.12 13:59

수정 2020.06.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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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중 최초로 국내 법원에 친생자 인지 소송을 내 승소한 강미숙(카라 보스)씨가 12일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36년 만에 아버지를 찾은 30대 미국 입양 여성이 친생자 관계임을 인지해달라며 소송을 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해외 입양인이 국내의 친부모를 상대로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는 12일 강미숙(38·미국 이름 카라 보스)씨가 친부를 상대로 낸 친생자 관계 인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강씨는 이날 법정에서 잠시 환한 웃음을 짓더니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흐느꼈다.
  
1983년 11월 충북 괴산의 한 주차장에서 발견된 강씨는 이듬해 9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기록부에는 ‘인적사항 : 이름과 나이를 말하며 영리함’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성인이 된 뒤 네덜란드 출신 남편과 결혼해 현재는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강씨는 2살이 된 자신의 딸을 보고 친모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2016년 3월에는 무작정 한국에 방문해 자신이 발견된 충북 괴산 주차장을 다시 찾아 가족을 찾는다는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강미숙(오른쪽)씨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모습. 미국에 입양된 강씨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 [사진 강미숙씨]

  
그런 강씨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침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전자 정보(DNA)로 자신의 뿌리가 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찾아주는 족보 사이트가 유행하고 있었다. 영국에 유학을 왔던 한 한국인 남성 A씨도 해당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DNA 정보를 공유했는데 강씨의 X염색체와 77.9%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강씨는 런던으로 달려갔다. A씨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으로 보여준 주변 가족들과 자신이 무척 닮았다. A씨 주변 가족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 있던 A씨 주변 가족들은 강씨가 점점 다가오자 연락을 끊었다.  
  
결국 강씨는 지난해 11월 한국 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 오모씨의 서울 강남구 주소를 알게 돼 찾아갔지만 만나 주지 않았다. 강씨 측 변호를 맡은 양정은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상속 문제가 얽힐까 주변 가족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우리는 단지 아버지 측으로부터 친모 정보를 받아 어머니를 만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모가 ‘카라 보스’라는 영문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강미숙’이라는 이름을 반드시 포함해 보도해 달라”고도 언론에 요청했다.
  
이날 염 부장판사는 “강씨는 오씨의 친생자임을 확인한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된 이후 강씨가 인지 신고를 하면 오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피인지자’로 기록될 예정이다. 가족들과 조율 끝에 강씨는 다음 주 아버지와 처음 만날 수 있게 됐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