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민법 개정 부른 아동 학대…적절한 훈육 방법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2020.06.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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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62년간 유지된 민법의 ‘징계권’ 조항을 없애고, 체벌 금지를 명시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근 벌어진 아동 학대 사건들의 양태나 수위를 보면 개정 자체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지난 3일 충남 천안에서 40대 계모가 아홉 살 남자아이를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둬 결국 숨지게 했다. 경남 창녕에서 학대를 피해 집을 뛰쳐나와 구조된 아홉 살 여자아이의 경우 계부와 친모가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가락을 지지고, 쇠사슬로 목을 묶고 테라스에 자물쇠로 잠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밥은 하루 한 끼만 주고 물에 담가 숨을 못 쉬게 했다고도 하니 폭력을 넘어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다.
 
남이 내게 이런 짓을 했다면 당장 수사기관에 고소해야 할 범죄행위다. 그런데 유독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민법상 ‘징계권’ 조항이 이런 오해를 조장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민법은 부모를 비롯한 친권자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913조), 이를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915조)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가들은 징계가 자녀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에서도 체벌을 금지하는데, 부모 등 친권자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도 오랜 가부장적 가족문화 속에서 훈육을 위해 징계가 필요하고, 징계에는 체벌이 포함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자녀를 학대한 부모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훈육 목적이었다고 항변하고, 법원은 이를 일부 받아들여 감형해 주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물론 징계권 삭제가 가정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간섭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또 어디까지를 체벌로 볼 것인지,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할 때 가르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등의 논란이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보호하고 교양하는 수단인 징계권이 아이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나아가 폭력의 대물림으로 귀결된다면 사회는 다른 수단과 이름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법무부는 오늘 아동 관련 기관·단체와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의 적절한 훈육과 교양의 방법을 찾아 법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