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폐 페트병 16개로 만든 가방’으로 유명한 ‘플리츠마마’의 왕종미 대표(41)에겐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국내 폐 페트병으로 제품을 만드는 게 왕 대표의 목표이자 숙제였기 때문이다.
니트 제품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왕 대표는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공장에 남은 울·캐시미어 원단이 그대로 버려지는 걸 보고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만들자 결심했다.
“규모로는 7t, 액수로는 7~8억 원어치나 됐죠. 그걸 고스란히 못쓰게 된 것도 속상한데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자 생각했죠.”
새로운 재활용 소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효성티앤씨가 10년 전부터 폐 폐트병에서 추출해온 폴리에스터(이하 폴리) 원사 ‘리젠사’였다. 나이키·파타고니아 등 글로벌 기업에서 연간 10만t씩 사가는 소재로 주로 등산복이나 운동화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일반 폴리 원사보다 가격은 비쌌지만 우리의 철학과 맞았고, 품질도 검증된 터라 이거다 싶었죠. 효성티앤씨에서도 몰랐던 일인데 리젠사는 염색 시 발색력도 좋아서 패션 용품을 만드는 데는 제격이에요.”
최근엔 환경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개발공사(삼다수), 효성티앤씨와 함께 친환경프로젝트 ‘다시 태어나기 위한 되돌림’ MOU도 체결했다. 7월부터 시행되는 ‘비닐,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에 따라 제주도가 시범 케이스로 버려지는 투명 페트병을 깨끗이 수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리사이클 섬유 제조 기술을 가진 효성티앤씨가 국내 폐 페트병으로 리젠사 섬유를 만들고, 플리츠마마는 이 섬유로 의류와 가방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플리츠마마를 시작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점이 페트병을 수입해서 원사를 만든다는 점이었어요. 국내에서 수거된 페트병은 쓰레기 분리수거 과정에서 유색·무색이 섞이고 레이블과 더러운 내용물도 제거가 안 돼서 재활용하는 데 돈이 더 들기 때문에 일본·대만 등에서 깨끗한 페트병을 사다 쓴다는 거예요.”
국산 페트병을 이용하고 싶었던 왕 대표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숙제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위험부담도 컸다. 국내산 페트병으로 장섬유를 만드는 건 처음이라 효성티앤씨도 품질을 보장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30~40t의 실이 허공에 뜰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원사가 잘못 나오더라도 우리가 전량 구매하겠다고 했죠. 지금까지 번 돈을 다 쏟아 붓더라도 꼭 국내 페트병으로 제품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다행히 효성티앤씨도 한 번 해보자고 뜻을 모아줬어요. 구미공장의 수 백t 짜리 생산 라인을 며칠씩 멈추고 30~40t의 우리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기계 세척을
따로 하는 등 큰 손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줬죠.”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다시 페트병을 만드는 건 손해에요. 엄청난 인건비와 세척·분리 등의 생산 시스템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런데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10만~20만원 짜리 가방을 만들면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죠. 폐 페트병이 비싼 원료로서 가치를 갖게 되면 관련 리사이클 공장들이 이 산업에 뛰어들겠죠. 안 그러면 정부 보조금으로만 움직이는 국내 재활용 시장은 품질과 시스템이 점점 더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플리츠마마는 현재 L7호텔과도 협업 중이다. 호텔은 투명 페트병에 담은 물병을 많이 사용하는 곳이다. 때문에 L7 호텔과 함께 투숙객이 레이블을 제거한 페트병을 가져오면 선물을 주는 리워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로 투숙객이 현저히 줄어 수거된 페트병이 아직 많지 않지만 왕 대표는 이렇게 수거된 페트병으로 또 다른 제품을 만들 계획에 부풀어 있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 왕종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