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타도해야” 대륙 뒤집어놓은 중국 축구전설

중앙일보

입력 2020.06.08 00:03

수정 2020.06.0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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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의 전설 하오하이둥이 지난 4일 갑작스레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중국 바이두]

중국의 민주화 운동인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31주년인 지난 4일, 중국 축구의 전설 하오하이둥(郝海東·50) 이 “중국 공산당 타도” 선언을 해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하오는 ‘중국 최고의 골잡이’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등으로 불리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그라운드를 누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때 중국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주역이다.
 
하오는 약 20분 동영상에서 ‘신중국연방건국선언’을 발표했다. “중국 공산당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법치를 위반하는 테러조직”으로 “천안문 시위를 진압하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공산당 멸망은 정의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중국이 코로나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의 정치체제와 ‘1인 1표’에 의한 신중국을 건설해야 하며, 이를 위해 ‘히말라야 감독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티베트 신장 지구 자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끄는 현재의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낸 도전장이다.

2002월드컵 본선 주역 하오하이둥
“공산당은 멸망해야 할 테러조직
세계에 코로나 퍼뜨려” 폭탄 발언
중국 43위 부자, 셔틀콕 여왕과 재혼
평소에도 바른말 잘해 별명 ‘대포’

중국 당국은 팔로워가 770만이 넘는 그의 웨이보 계정을 바로 폐쇄했다.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그의 소식은 신속하게 지워졌다.  
 

하오는 지난해 세계 여자배드민턴 1위 출신의 예자오잉(사진 왼쪽)과 재혼했다. [제남시보망 캡처]

중국 언론의 공격도 시작됐다. 스포츠 사이트 후푸(虎朴)와 신문 체단주보(體壇周報)는 “하오가 중국 주권을 해치는 말을 해 관련 토론을 금지한다”며 관련 기사를 모두 내렸다. 최근 스페인에 머무는 하오는 미국에서 선언을 발표했는데, 배후엔 반체제 인사 궈원구이(郭文貴)와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활동한 스티브 배넌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오는 지난해 세계 여자배드민턴 랭킹 1위 출신의 예자오잉(葉釗潁·46)과 재혼했고, 중국에 축구학교도 세웠다. 2006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쉐필드 유나이티드에서 뛰다 은퇴했지만, 사업 수완이 뛰어나 2004년 포브스가 만든 중국의 부호리스트 43위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내 큰 영향력을 지닌 하오의 선언으로, 한창 애국주의에 불타고 있는 중국 사회가 받는 충격은 크다. 그는 평소 거침없이 바른 소리를 잘해 ‘대포’로도 불렸다. “나는 축구를 배울 때 정직과 선량, 존중, 팀워크부터 배웠다. 한데 중국에선 어린 선수 나이를 세 살, 다섯 살까지 깎는다. 이렇게 나이를 속여 놓고 선수에게 무슨 정직한 플레이를 기대하나. 스페인 테니스 선수 나달이 스페인 수영협회 회장을 할 수 있나. 중국은 탁구선수 출신이 축구를 지휘한다. 말이 되나.” 지난 2016년 산둥(山東) 성에서 어린 축구 선수들과 그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다.
 
하오의 이번 선언은 중국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결과로 보이지만, 그와 재혼한 예자오잉의 영향도 있었으리란 추측이 나온다. 예도 동영상에서 “남편의 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예는 세계 랭킹 1위였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당시 준결승에서 동료 중국 선수에게 져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예는 은퇴했다.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말과 함께다. 축구와 배드민턴의 전설 두 사람이 갑작스레 반기를 든 사건에, 중국 사회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