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변경 수수료 없다?, 보호 장치도 없다!
항공업계는 거대한 현금자산이 필요한 업종이다. 항공서비스를 펼치는데 필요한 인건비와 공황시설 이용료는 기본이고, 비행기 부품을 관리하는 정비 비용도 크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비행기가 아예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등 운영비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공항시설 이용비와 정비 비용은 운영 여부와 상관없이 꾸준히 들어가는 돈”이라면서도 “그러나 비행기 부품은 현행법상 항공사들이 여분을 준비해놔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항공사들이 1~2년 전부터 선(先)구매하고, 매달 부품값을 납부라고 있다. 현재 현금자산이 없으니, 부품값도 제대로 못 내고 정비도 못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항공운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ABS(Asset backed securities, 항공운임채권)도 문제다. 항공사는 ABS를 활용해 미리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노선 운행 이익으로 갚아가는 시스템을 따르는데, 이 채권을 갚을 여력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향후 비행 일정도 확실치 않아, 추가적인 채권 자금 조달도 어려운 상황이다.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난 4월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ABS 신용등급을 각각 A와 BBB+에서 A-와 BBB로 강등했다.
기한 내 무료변경 1회, 연장기간도 1년 내
‘지금 예약하면 취소하거나 환불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소비자의 불안감을 줄인 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각 항공사가 내건 이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안요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1회’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인들이 항공권을 미리 사두는 것이 이득이냐고 물어오지만 그때마다 웬만하면 사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사정에 의한 변경과 환불이 수수료 없이 이뤄지는 건 큰 혜택이지만 출발일을 1회 변경하면 그 혜택은 끝난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1회 변경 혜택만 보고 항공권을 구입하기엔 도박과 같다”고 말했다.
변경일자도 항공사가 정한 기간 안에서 선택해야한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언제든 자유롭게 출발일정을 한번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항공사 약관까지 찾아보면 출발 일정을 바꿀 수 있는 기간은 대부분 1년 내로 짧다. 제주항공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는 항공권을 변경하더라도 10월 25일 이내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변경해야한다. 연장 기간이 길게 잡아도 8개월에 불과하다. 대한항공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는 구매한 당일으로부터 1년 안에 출발하는 항공권으로 변경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이벤트 홈페이지에는 변경가능 일자와 변경 출발 가능 기간에 단순히 ‘항공권 유효기간 이내’라고 적어뒀다. 그러나 대한항공사 약관을 꼼꼼히 따지면 해당 이벤트 유효기간은 운송개시일로부터 1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외국항공사들의 ‘안심구매 캠페인’은 횟수 제한과 기한 제한을 없앴다. 캐세이퍼시픽은 6월 30일까지 항공권을 예약한 소비자에게 1년 동안 횟수와 상관없이 항공권 변경에 대한 수수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기간은 1년 내다. 반면 루프트한자그룹은 변경할 항공권에 대해 사용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외항사 항공권은 100% 믿을 수 있다’고도 볼 순 없다. 지난 3월 외항사들이 국내 소비자의 환불접수처리 시스템을 아예 차단하는 문제가 있었다. 베트남항공, 에어 아스타나, 엔 에어프랑스, KLM 네덜란드항공 등이 잇따라 한국 소비자들이 신청하는 환불 시스템 전체를 내렸다. 외항사는 국내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일방적인 조치에도 법적 소송 또는 공정거래위원회 신고가 어렵다. 환불처리 시스템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항공사가 현금자산 확보에 허덕이다 ‘파산’에 이르면 더욱 큰일이다. 항공사 파산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4월 호주의 2위 규모 항공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가 자발적 법정관리에 돌입했고, 태국 국영항공사 타이항공은 5월 19일 파산법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라탐항공그룹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보름 앞서 2위 항공사 아비앙카 항공도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항공사 파산시 환불은 사실상 어려워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