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뉴욕과 도쿄, 런던에 이어 세계 4대 자본시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뉴욕이나 도쿄, 런던이 따라갈 수 없는 홍콩의 독보적인 위상 하나가 있다. 바로 포르투갈의 리스본,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함께 세계 3대 스파이 도시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홍콩·리스본·카사블랑카, 3대 스파이 도시
홍콩, 비자 면제 국가 많고 돈 세탁 유리
간첩죄 처벌 법규 없어 ‘스파이 낙원’
중국 대륙의 내밀한 정보 수집 창구
‘보안법’ 도입 후 ‘간첩=무죄’ 공식 깨져
‘스파이의 낙원’이 된 건 홍콩이 세계적인 자유항으로 100여 개 국가와 비자 면제 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부류의 사람이 홍콩을 오가기에 편하다. 지리적인 접근성도 뛰어나다.
육로는 뤄후(羅湖), 황강(皇崗) 등 두 검문소를 통해, 또 수로는 선전(深圳)의 서커우(蛇口) 검문소를 통해 중국과 이어진다. 매일 홍콩과 중국 대륙을 오가는 사람만 10만 명이 넘는다. 이 중에 스파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국에 대한 내밀한 정보 수집의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웬만한 정보 부서는 모두 다 중국 대륙에 대한 교두보로서 홍콩을 이용하고 있다.
홍콩의 교통이 세계 각국과 쉽게 연결되고 통신의 완전한 자유로 정보 교환이 원활하며 출입국과 자금 거래에 이렇다 할 제한이 없어 스파이들로선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홍콩인은 여러 나라의 여권을 갖고 있으며 외국인과의 접촉에 열려 있어 정보원으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높다. 돈세탁하기도 편하고 비즈니스맨이라는 외투만 걸치면 홍콩 사회에 쉽게 녹아들어 정보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홍콩에 나와 있는 미 공관의 직원 수만 1000여 명 가까이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정보 당국 관계자가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아주주간은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홍콩 포진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홍콩을 식민 통치했던 영국은 정보활동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홍콩 반환 이전 영국 정부는 홍콩 경찰의 경무처 내에 ‘정치부’를 설립했는데 이 ‘정치부’는 영국 군사정보국 5처에 예속돼 주로 사회주의 국가의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들은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모두 해외로 나갔는데 반환 후 다시 홍콩으로 조용히 돌아와 활동하고 있다고 아주주간은 말했다. 정부 관계자 또는 주요 사업체 운영자란 신분으로 홍콩에 잠입해 정보수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 정보 캐기 역량이 가장 뛰어난 대만 군사정보 부문은 과거 홍콩에 기지를 4개씩이나 운영하며 각종 병기와 폭약 등 군수 창고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이 반환되기 전 이 같은 시설은 철수했지만, 정보원은 아직도 암암리에 활약 중이다.
비즈니스 관련 법률만 발달하고 간첩죄는 전혀 없는 홍콩은 이제까지는 다른 나라의 스파이를 잡는다 해도 가장 엄한 처벌이 출국 조치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홍콩 보안법’ 도입은 곧 ‘간첩죄’가 있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고 아주주간은 말했다.
‘홍콩 보안법’이 처벌을 명시한 대상은 네 부류다. 국가 분열이나 국가 정권을 전복하는 사람, 테러분자, 홍콩 사무에 간여하는 외부 세력이다. 스파이 활동은 이 같은 처벌 범주에 속한다. 이에 따라 ‘홍콩 간첩=무죄’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는 이야기다.
아주주간에 따르면 홍콩의 많은 매체는 지난해 홍콩에서 펼쳐진 많은 과격 시위 배후에 미 CIA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으로 의심한다. 시위대가 ‘홍콩독립(港獨)’, 심지어 ‘무장건국(武裝建國) ‘구호를 외치고 미 성조기나 영국 유니언잭을 흔드는 걸 그런 예로 든다.
그러나 빠르면 6월 안으로 입법이 완료될 ‘홍콩 보안법’ 도입으로 인해 앞으로 홍콩에서의 정보 활동은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동방의 진주’란 별칭과 함께 ‘동방의 스파이 수도’라는 타이틀 또한 종언을 고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