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00님께서 숙환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조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조의금은 굿네이버스에 기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모(47)씨가 지난 3월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고민이 생겼다. 통상적인 장례를 치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장례절차를 간소화하고, 조의금은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조문을 원하는 지인들에겐 조의금 계좌 대신 본인이 8년간 기부하고 있던 비영리단체의 후원계좌를 안내했다. 이렇게 모인 아버지의 조의금은 위기가정 아동 2명의 집을 고쳐주고,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바꾸고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경조사가 줄어들며 축의금과 조의금 기부사례가 늘고 SNS를 통한 언택트 기부도 확대됐다. 또 스타들의 기부는 시민들의 릴레이기부로 이어졌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 집에 컴퓨터가 없어 온라인 수업을 듣기 어려운 취약계층 아동, 마스크가 없어 외출조차 어려운 결식아동에게 코로나19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이들의 어려움에 공감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웃을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기부의 세계
결혼식 간소화 해 축의금 기부
유명인 따라 나눔 릴레이 확산
도움받던 취약계층도 나눔 동참
도움을 받던 취약계층도 도움을 주는 기부자로 나섰다. 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는 특별한 선물이 전해졌다. 뇌성마비와 시청각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 강모씨(60)가 전달한 마스크 20장. 강씨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신경 써 주신 직원들의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원에선 시각장애인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마스크 50장과 성금 10만원을 기부했다. 마스크 품귀현상을 접하며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직접 면마스크를 만들어 보낸 경우도 있다. 나의 어려움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도운 작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이번 위기 속 나타난 시민의식은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십시일반 돕는다’는 우리나라의 상부상조 문화가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며 “다양한 기부사례들이 늘어난 데에는 투명성과 신뢰성을 갖춘 비영리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모금캠페인을 펼치며 기부자들의 동참을 끌어낸 것이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노유진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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