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치타, 아니 배우 김은영(30)의 말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랩 가사와 무대로 이름난 그가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초미의 관심사’(감독 남연우)로 연기에 도전했다. 최근 연애 리얼리티쇼 ‘부러우면 지는거다’(MBC)에 함께 출연 중인 남연우(38) 감독을 2018년 이 영화 촬영을 하며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 27일 개봉
치타, 재즈가수역 맡아 배우 데뷔
“나와 주인공 싱크로율은 50%”
연인 남연우 감독 “연기에 놀라”
그가 연기한 순덕은 ‘치타’와 닮은, 소위 ‘센 언니’다. 이태원에서 ‘블루’란 예명의 재즈 가수로 일하는 그는 어느 날 집안 돈을 몽땅 들고 사라진 여동생 유리를 찾으려 들이닥친 엄마(조민수)와 하루 동안 이태원 일대를 뒤진다.
“순덕과 싱크로율요? 50% 이상이죠.” 그는 “순덕이 엄마와 살던 집에서 나와 음악을 한 친구라면, 실제 저는 어릴 적 음악 한다고 부산에서 일산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순덕은 치타랑 좀 더 닮았고 ‘김은영’이란 사람은 엄마 캐릭터랑 더 비슷해요. 사람 챙기는 것,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고 불같은 성격요. 순덕과 엄마한테 치타와 은영이 다 있죠.”
그는 순덕의 라이브 공연과 녹음 아르바이트 장면에서 주제가 ‘Need Your Love’와 ‘Urr’ ‘Film’ 등 다섯 곡의 재즈풍 자작곡을 직접 부른다.
원래 가수를 꿈꿨다는 그는 17세에 대형버스에 치이는 큰 사고로 뇌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가 낮고 허스키해지면서 랩으로 전향했다. “노래들을 들은 제작사 대표님이 ‘구상 중이던 영화에 들어가면 좋겠다’며 ‘아예 치타씨가 출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이 영화 제작사는 tvN 드라마 ‘방법’을 만든 레진스튜디오다.
영화에서 엄마는 가수 꿈을 포기하고 혼자 순덕 자매를 키웠다. “너는 밥 먹는 것보다 가출을 더 많이 했어.” “밥이나 해 줘봤어?” ‘센 모녀’의 대화 속에 서운함과 짠함이 툭툭 묻어난다.
그는 연기에 대해 “다른 언어를 하나 배웠다”고 했다.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담백한 감정 표현은 래퍼로서 무대를 장악할 때와는 또 다른 단단함으로 안정감 있게 극을 받친다.
남 감독은 지난 18일 개봉 전 간담회에서 “연기란 무엇인가 20년 가까이 고민한 저보다 (김은영이)많은 순간 너무 잘해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며 “‘이 인물이 할 법한 생각을 그 순간에 진짜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밖에 안했는데 그걸 잘 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순덕이 객석의 엄마를 마주 보며 ‘Need Your Love’를 부를 때 김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단다. 영화를 볼 때마다 자꾸 “오열하게 된다”는 장면이다.
“엄마가 딸을 응원하면서 앉아 있다가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런 모습 딸한테 보이기 싫어서 (밖으로) 나간 것 같거든요. 딸도 자기 앞에서 항상 강해 보여야 했던 엄마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엄마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이 한 거 불쌍해, 안됐어, 하고. 안 운 테이크도 있었는데 결국 그 복합적인 감정의 장면을 감독님이 택해주셨죠.”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늘 함께하고 싶어 왼팔에 양복 정갈하게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문신으로 새긴 그다. 어머니와 2년여 전부터 서울에서 같이 살게 된 이야기를 꺼냈다.
“10대 때 본 엄마는 강하고 누구보다 용감했는데, 지금은 그 강인함 뒤 여림이 겹쳐 보여요. 이제 ‘아, 우리 엄마가 원래 그렇게 강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겠지’싶거든요. 순덕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가 직접 섭외했다는 드랙퀸 나나부터 문신가게 싱글맘, 게이커플, 트랜스젠더, 피부색 다른 한국 청년 등 이태원의 각양각색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우러지며 모녀의 여정은 유쾌하게 흐른다.
“편견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배우로서 그가 갖는 바람이다. “(남성 중심 힙합계에서) ‘여자 래퍼’로 활동하면서 시스템적으로, 상업적으로 부딪혀온 지점들이 있었다. ‘너무 리스크 있어’ ‘안 해봤는데 안 될 것 같아’, 그런 게 다 편견이다. 그렇게 배제하니 더는 새로운 게 나오지 않는 것”이라며 “제 숏컷을 보고 처음엔 ‘너무 세보여’ 했던 이들도 이젠 ‘치타지 뭐’ 한다. 안 해보고 ‘익숙하지 않아서 안 된다’, 하며 막아온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결국 목표는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거죠. 서로 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다 밀어낼 필요도 없고 각자 한 명, 한 명을 하나밖에 없는 가장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인정해주면서 잘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느날 제가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해하는 주제들을 계속 살살 많이 노출시킨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