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마케팅 웹 컨설턴트로 일하는 카타오카 스스무는 최근 아내로부터 집안일 리스트를 작성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아이들 등 하원’, ‘놀아주기’, ‘설거지’ 등 8가지를 적어냈다. 그러자 아내는 190가지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전했다. ‘머리카락 줍기’, ‘행주 삶기’, ‘아이들 깨우기’ 등 평소 카타오카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들도 적혀있었다.
아내는 “내가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기를 바란다”며 “앞으로 집안일을 나눠서 하자”고 요구했다.
카타오카가 한 달 전 트위터에 올린 사연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아내에게 가사분담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카타오카는 “집안일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많은 남편들이 아내들의 수고스러움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 남편, 돕는 법을 배우다”
NYT는 남편의 가사 참여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NYT는 “일본의 맞벌이 부부 가운데 절반 이상은 ‘남편의 가사 참여율이 20% 이하’”라며 “전 세계에서 유독 많은 집안일을 하고 있는 일본 여성들이 그 짐을 덜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드러내며 이혼 위기에 놓였다. 도시 봉쇄로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갈등의 원인에는 집안일에 대한 불만도 포함됐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평소 바쁜 회사업무와 사회생활로 가정일에 소홀했던 남편들에 대한 아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집안일을 모두 아내에게 맡기는 남편들의 의존성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아내 SOS에 집안일 배운 남편들
이제 그는 매일 아이들의 점심과 숙제를 챙기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테라지마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계속해서 집에서 일하며 집안일을 돕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도시 봉쇄 풀려도 가사 분담 계속될까?
NYT는 그 원인으로 ‘경직된 기업문화’를 지목했다. 기업에 대한 충성심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노동 문화가 남편들을 가정보다 일에 더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보다 남성의 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남편은 경제적 책임을, 아내는 집안일을 전담하는 구조라고 NYT는 분석했다.
남편은 집안일 습관화, 기업문화 바꿔야
카타오카는 “업무에 치이면 또 집안일에 소홀해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신 집안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들고 다니며 몸에 익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내들의 사회생활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남편이 집안일을 분담해야 한다”며 “집안일을 소홀히 보지 말고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테라지마는 기업문화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며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일본의 융통성 없는 기업 문화를 바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