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국 압박 위해 TSMC를 지렛대 활용
미·중 구애 받는 TSMC 해부
미국 애플·퀄컴·AMD·엔비디아·브로드컴 등이 핵심인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TSMC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 역시 TSMC가 없으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스(AP) 칩이나 통신장비용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이 여의치 않다. 미국이 자랑하는 퀄컴은 5G 통신용 칩에서, 중국이 아끼는 화웨이는 장비에서 각각 기술 우위를 갖고 있지만, TSMC에서 비메모리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지 못하면 차질이 생긴다. TSMC가 미·중 반도체 패권의 급소를 쥐고 있는 셈이다.
TSMC, 미국에 120억 달러 투자 카드 꺼내
노골적인 ‘친미(親美)’ 발언으로 읽히지만, 관련 업계에선 TSMC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굴복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애플·퀄컴·AMD 같은 주요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18일에는 미국 등 서방 언론이 TSMC가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등장했다. 하지만 TSMC 측은 “시장의 루머일 뿐”이라며 부인했고, 중국 언론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화웨이 역시 가부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TSMC와 화웨이의 단교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완전히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도 아니다.
파운드리 점유율 54%로 ‘절대 강자’
애플 스마트폰용 AP 만들며 비약 성장
TSMC는 대만에서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이 1987년 설립했다. 현재는 민영화됐지만, 창업 당시 대만 정부가 자본의 절반을 투자했다. 현재 대만 정부의 지분은 약 6% 정도다. TSMC는 ‘순수 파운드리 기업’ 전략을 내세우며 고객사를 확보했다.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슬로건까지 만들었다.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것이 TSMC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의 심장으로 불리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위탁 제조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TSMC가 수주한 고객만 499곳, 만들어낸 반도체 종류만 1만761개에 달한다.
“1나노 자신” … 4차 산업혁명 키 쥐고 있어
TSMC는 미세 공정 기술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며 경쟁자들을 앞서나가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업체 중 7나노 미세공정 기술을 보유한 곳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또 올해는 삼성전자에 앞서 5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했고, 삼성전자가 먼저 개발한 3나노 제품을 2022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부터 5나노 제품을 양산한다. 필립 왕 TSMC 부사장은 지난해 ‘반도체 타이완 2019’행사에서 “TSMC는 3나노 공정 외에 2나노는 물론 심지어 1나노 공정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TSMC의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은 5G 통신뿐 아니라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이다. TSMC를 누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 향방이 갈릴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을 다투며 TSMC가 서로 자기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에서 TSMC의 유일한 경쟁자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비전 2030’을 앞세워 파운드리 분야의 선두인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