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함바왕’에 수사기밀 흘렸나···“경찰이 전화” 녹취 입수

중앙일보

입력 2020.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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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함바왕’ 유상봉(74)씨 일당이 압수수색을 당하기 직전 수사기밀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내 유씨 일당과 유착된 세력이 범죄 증거를 없애도록 기밀을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유씨 등은 총선(인천 동구·미추홀을)에서 윤상현 당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자인 안상수 후보를 고소하고 관련 보도가 나게 한 혐의를 받는다.
(5월 18일 중앙일보 『[단독] 출소날 체포된 ‘함바왕’···이번엔 윤상현 끌어들였다』 참고) 
 
19일 중앙일보가 유씨 아들과 유씨 측근 박모씨가 압수수색을 당하기 3일전·1일전 전화 통화한 녹취 파일 2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수차례에 걸친 수사기밀 유출 정황이 드러났다. 둘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시간순으로 정리해봤다.

‘함바왕’ 유상봉(74)씨 추정 인물이 2011년 6월 20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5월 11일(압수수색 3일 전)

아들: 문제가 생긴 거 같은데요. 광역수사대에 있는 친구가 전화 왔는데. 기자도 두 명 전화 오고요. 경찰에서 지금 윤상현이랑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내사를 하고 있다는데. (유씨 아들은 평소 특정 매체 기자들을 알고 지냈다고 전해진다.)
측근: 뭐 때문에 그래?
아들: 이 관계를 아는 사람은 사실 저하고 몇 사람만…. 혹시 ○○○씨 이런 사람에게 윤상현 이야기를….
측근: 전혀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
아들: 그렇죠? 경찰이 저한테 전화 왔길래 딱 잡아뗐거든요. (수사팀 관계자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내사 도중 유씨 아들을 추궁한 것으로 보이지만, 수사팀 책임자인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중략)
측근: 내사할 것이 뭐가 있다고 그럴까.
아들: 누가 찔러서 지금 내사하는 거예요. 제보가 왔대요. (실제 수개월 전부터 경찰청 범죄정보과는 제보자들로부터 관련 첩보를 수집했고, 인천청 지수대가 배당받아 내사를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뉴스1

 

5월 13일(압수수색 하루 전)

아들: 서울구치소에 있는 아버지한테 확인 좀 해봤고요.
측근: 뭐를?
아들: 윤상현에 대해 이야기한 거 있느냐. 아버지는 펄쩍 뛰더라고요. 그런 거 없다고.
측근: 그런 거 어디가 있겠어.
아들: 아무튼 내일 보좌관(조 모 보좌관 추정) 만나기로 했거든요. 보좌관이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아 윤상현이가 전반적으로 ○○건설에 관련된 부분을 이렇게 가지고 해줬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그거 말고도 여러 이권 사업을 청탁했다. 그래서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고 압수수색 영장이 나온 거예요.
측근: 어디를?
아들: 윤상현 의원 사무실이에요.
측근: 경찰에서?
아들: 예. 압수수색 영장이 어제저녁에 떨어졌다니까요. (영장 신청·청구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장은 13일 낮 12시쯤 발부됐다.)
측근: 뭔 일이라냐.
아들: 작은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명색이 현직 국회의원실을 압수수색할 정도면…. 제가 아무튼 내일 거기 가서 만나기로 했으니까요. 보시죠.
측근: 큰일이네. 어디에서 압수수색을 한다는 이야기야?
아들: 인천경찰청이요. 저도 머리가 아파요.
(중략)
아들: 기자들은 다 알더라고요.
측근: 그래?
아들: 저도 그 기자들한테 처음으로 들었고.
(중략)
아들: 기자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제. 저보고도 사실관계 때문에 전화가 왔다니까요. 아버지하고 윤상현씨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모른다고 했는데. 
(중략) 
아들: 넘어가겠죠, 뭐. 아직 압수수색이 안 들어왔고. 윤상현 의원 사무실에서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가 봐요. 무슨 상황인지. (2개의 녹취파일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유씨 아들과 유씨 측근 박씨, 조 보좌관에게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거나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인천지방경찰청. 중앙포토

 
다음날인 14일 인천청 지수대는 유씨와 유씨 아들, 유씨 측근 박씨, 조 보좌관 등 6명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유씨 일당이 사전에 입수한 정보와 거의 비슷하게 강제수사가 개시된 것이다. 이후 경찰은 17일 다른 범죄로 징역형을 살다 갓 출소한 유씨를 체포했다. 그러나 경찰은 18일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석방했다. 영장을 신청할 만큼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 안팎에서는 “사전에 수사기밀이 유출된 탓 아니냐”는 목소리가 크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밀이 외부로 유출됐다면 심각한 문제다”라며 “공정한 수사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기밀이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 명확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검·경 관계에서 경찰에 힘을 더 실어주는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 개혁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민중·심석용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