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윤미향 수사에 좌고우면하면 ‘정치 검찰’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19 00:08

수정 2020.05.1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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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참담한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정부·기업이 낸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용서받기 어려운 도덕적 일탈이자 중대한 법 위반이다. 지금까지의 보도 내용에는 횡령 또는 배임을 의심케 하는 여러 단서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후원금과 지원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이런 사안에 검찰이 나서게 된 것은 국가적 수치라고도 볼 수 있으나 국민의 의심이 너무 커져 불가피한 상황이 돼 버렸다. 윤 당선인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수사로 규명해야 할 의혹은 크게 세 갈래다. 하나는 시민·기업 후원금과 정부 지원금 횡령 여부다. 윤 당선인이 운영을 책임져 온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서류는 엉성하기 짝이 없어 기금 사용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순 회계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다. 둘째는 윤 당선인이 개인 명의 계좌로 받은 후원금의 착복 여부다. 셋째는 경기도 안성시의 피해자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의 횡령·배임 여부다. 윤 당선인이 만든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7년 전에 이 집을 8억5000만원에 마련했고, 최근 4억2000만원에 팔았다.

더딘 수사에 증거 은닉과 말 맞추기 우려
여권 인사들 궤변 무시하고 원칙 따라야

 
수사·회계 전문가들은 의혹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돈의 흐름을 좇으면 상당 부분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윤 당선인과 주변 사람들의 돈거래를 확인하면 횡령·배임 여부도 가릴 수 있다고 한다. 검찰에는 기업 비자금 수사를 해 온 자금 추적 전문가들이 있다. 검찰이 수사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윤 당선인 의혹 관련 단서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상에 있던 여러 글이 이미 지워졌고, 후원금 모금에 사용된 개인 명의 계좌들이 해지됐다. 문서 은닉이나 주변인과의 말 맞추기가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이런 수사에는 초기의 자료 확보가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법무부 인권국장을 맡았던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정치 검찰 엉덩이가 들썩이는 게 보인다. 압수수색부터 하고 보자는 심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인사들은 검찰 수사를 방해하거나 막으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더는 보이지 않기 바란다. 검찰은 이 같은 황당한 정치적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면 된다. 이 사건은 파렴치한 횡령 행위가 진짜 있었느냐를 가리는 단순한 수사일 뿐이다. 검사가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의 굴레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