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홍준표 'X개 설전'만 기억나는 통합당 '참패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2020.05.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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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뉴스1

 
미래통합당이 4ㆍ15 총선 참패 이후 한 달째 혼선을 이어가고 있다. 총선 패배 1개월을 맞아 지난 15일 열린 ‘길 잃은 보수정치,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오신환ㆍ유의동 의원 주최)는 정작 주목을 못 받고 외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이 설전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설전은 토론회에 참석한 진 전 교수가 “당의 대선 후보까지 지낸 분이 X개도 아니고 집 앞에서 이렇게 싸우느냐”고 홍 전 대표를 비판한 게 발단이었다. 이에 홍 전 대표는 “자중하라. 분수 모르고 자꾸 떠들면 자신이 ×개로 취급당할 수 있다”(16일)고 맞섰다. 당 내부에선 “보수 재건을 위한 청사진보다 외부 인사 간 ‘X개 설전’만 펼쳐지는 게 우리 당의 현실”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①김종인만 보는 사이… 리더십은 진공

김종인 미래통합당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뉴스1]

통합당 혼란상은 리더십 공백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선출된 뒤 당 대표 권한대행을 함께 맡고 있다. 그러나 정식 당 대표 자리는 한 달째 공백 상태다. 
 
차기 지도체제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통합당은 21~22일 국회에서 당선인 84명 전원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열어 ▶김종인 비대위 ▶조기 전당대회 ▶내부 혁신위원회 구성 등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결론을 내지 못하면 표결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당 내부에선 지난달 28일 전국위 때처럼 극한 대결 양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 찬반을 두고 회의장 곳곳에서 고성ㆍ욕설이 터져 나왔다. 가까스로 가결은 됐지만 활동 기간(4개월)을 늘리는 당헌 개정에는 실패해 김종인 내정자는 이를 거부했다.
 

②선언만 하고 삐걱대는 합당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조건부 합당을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지지부진한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합당 문제는 리더십 진공 상태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지난 1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조속히 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엇박자가 났다. 원 대표는 이튿날(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흡수통합이냐’고 묻는 말에 “당 대 당 통합이다. 민주정당인 만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 대표는 16일에도 ‘친조국’을 전면에 내세운 열린민주당 등을 겨냥 “범여권은 비례정당이 수두룩한데 우리 제1야당만 사라졌다. 참 분하고 억울한 일이 많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이를 두고 통합당에서는 “원 대표가 합당 시기를 늦추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조건 즉시 합당이 바람직하다”며 “우리는 준비가 다 돼 있다. 저쪽(미래한국당)이 빨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③“뇌사 상태”… 붕괴한 싱크탱크

당 내부에서 심각하게 보는 구조적 문제는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재건이다. 
 
통합당에 따르면 5월 기준 여연의 상근 연구인력은 10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이 간부급(실장)으로 실무 연구진보다 많다. 통합당 관계자는 여연과 관련해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보수진영의 전략과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냥 당 대표가 관심 있는 현안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여연 위상이 낮아지면서 ‘당 대표(비대위원장)의 여연 사유화→측근 발령→위상ㆍ역량 저하’의 악순환이 일어났다는 진단이다. 통합당 한 의원은 “당 싱크탱크는 당의 두뇌”라며 “여연이 이 지경이 됐다는 건 당의 뇌가 죽은 ‘뇌사 상태’라는 의미다. 제대로 된 정책이나 이슈를 제시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꼬집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