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이하경 칼럼] “기후악당 두목” 불명예 씻어야 할 문재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2020.05.1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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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

인도 펀자브지방 사람들은 150㎞ 떨어진 히말라야 설산(雪山)을 육안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4634명(5월 17일 기준)인데 그 두 배의 사람이 대기오염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했다. 경제활동과 화석연료 사용이 줄면서 공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역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탐욕의 노예가 된 현생 인류를 향해 최후의 경고를 발신중이다. 생전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기온이 250도까지 치솟고 매일 황산비가 내리는 지구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중단시키려면 지구에 대한 인간의 학대를 중단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 탐욕 경고
멸종 직면한 세계 ‘그린 뉴딜’ 채택
문 정부 소극적…국제기구가 압박
경제 피해·국격 타격 피할 수 없어

다행히 인류는 ‘그린 뉴딜’이라는 비상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리더인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녹색 경기부양(green recovery)’을 주창했다. 유럽연합(EU)는 ‘탄소 순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한 ‘유러피언 그린딜’에 합의했다. EU는 전체 GDP의 1.5%인 330조원을 기후위기 대응에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미국에서는 2018년부터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피터 부티지지가 ‘그린 뉴딜’ 바람을 일으켜 왔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지만 경기부양 과정에서 ‘그린’(녹색)의 존재감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만을 언급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제니퍼 모건 사무총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에게 그린 뉴딜 도입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방역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린 뉴딜을 선도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기후변화대응지수(CCPI)’가 61개국 중 58위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 에너지 소비 세계 9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세계 꼴찌, 미세먼지 농도 OECD 1위다.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불린다. 그린피스의 서한은 ‘기후악당 두목’에게 보내는 경고장인 셈이다.


‘녹색’은 진보의 어젠다였다. 진보인 문 대통령이 ‘녹색’에 소극적인 것은 뜻밖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주요 정책이었던 ‘녹색 성장(green growth)’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 MB의 ‘녹색 성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가치였다. 저탄소 에너지인 원자력을 중시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키우려 노력했다. 덕분에 2012년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이라는 유엔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GCF) 사무국을 송도에 유치하는 데도 성공했다. 기후변화대응 강국 독일과 경합해 이긴 결과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녹색’은 금기어가 됐다. 대통령 직속이었던 녹색성장위원회는  총리실 산하로 강등됐다. MB에 대한 박근혜의 사감(私憾) 때문에 빛나는 국가 자산이 산산조각났다. 문 대통령도 취임 첫해 “녹색 성장을 계승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 기조 아래 석탄발전 비중이 늘면서 온실가스 배출도 늘어났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은 “탈(脫)탄소 추세 속에서 10년도 가동하지 못할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처럼 추세에 역행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보수인 MB가 진보의 어젠다인 ‘녹색’을 꺼냈는데 진보인 문재인이 기피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박근혜와 뭐가 다른가. 더구나 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2050 그린 뉴딜 비전’을 외치지 않았는가.
 
총선 이후에는 중진인 송영길·홍영표·우원식·김두관 의원이 ‘그린 뉴딜’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국무회의 비공개 회의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문 대통령은 “요즘 그린 뉴딜이 화두”라며 “한국판 뉴딜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가 협의해 그린 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서면으로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제 그린 뉴딜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EU의 그린딜이 실행되면 탄소순수출국 한국은 탄소국경세를 물게 된다. “국내 3개 업체(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가 전기차 배터리 약정 수주액이 300조원이나 되지만 정작 공장은 해외에 짓는다. 전기차 배터리를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라는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린 뉴딜이 필요하다.”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스탠퍼드대 연구보고서는 한국이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144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착취에서 공존으로 전환하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300년간 지속된 화석연료 기반 물질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장정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시대착오가 된다. 역사상 최초로 소프트 파워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에 타격이 온다. 기업의 경제적 피해도 피할 수 없다. 한국 대통령이 “기후악당의 두목”이 되면 절대로 안 되는 이유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