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입장료 받자 욕…그래도 두리랜드 문 연 임채무 꿈

중앙일보

입력 2020.05.17 12:00

수정 2020.05.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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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문 열었는데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난리네요.”  

두리랜드 놀이시설을 소개하는 배우 임채무. 박현주 기자

텅 빈 놀이공원에 배우 임채무(72)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980년대 ‘사랑과 진실’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인기 드라마에서 주연을 꿰찬 인기 배우지만 그는 "오늘만큼은 화려한 시절보다 '두리랜드' 얘기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금연휴' 직후인 지난 6일 경기 양주 두리랜드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두리랜드는 그가 사비를 털어 만든 놀이공원이다. 임씨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거의 200억원을 들였다. 은행에서만 140억~150억원을 빌렸다”고 말했다. 1990년 문을 연 두리랜드는 지난 2017년 10월 공사를 이유로 휴업에 들어갔다. 이후 3년 가까운 동안 임씨 소유 여의도 아파트 2채를 팔았다. 광고 출연료 등 돈이 생길 때마다 역시 공사에 쏟아부었다.
 
언제까지 개장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 미루고 미루다 결국 황금연휴 직전인 지난달 24일 다시 문을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란 돌발 악재(惡材)에 대해 그는 “옛날엔 눈비 올 때만 휴장했는데 지금은 1년에 5개월 이상 문 열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인터뷰 당일까지도 놀이공원 사업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돈 벌고 싶었다면 안 했다" 

최근엔 입장료 문제까지 불거졌다. 원래 무료였지만 최근 입장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다. 입장료는 대인 2만원, 소인 2만5000원. 그는 "손님이 직원에게 손 소독제를 던지기도 하고 '놀이공원이 입장료를 받는다’며 신고까지 하더라"며 "여태껏 무료로 운영해서 인심 쓰는 척하더니 '돈독'이 올라 입장료 받아먹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사업장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신고한다는 게 너무 황당해 밤새 속으로 울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30년 만에 입장료를 받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출만 100억원이 넘습니다. 인생을 걸고 투자해서 만들었는데 입장료 안 받고 더는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키즈카페에서 어린이들이 3~4시간 놀 때도 입장료가 1만5000~2만원 하잖습니까. 두리랜드는 입장하면 온종일 놀다 갈 수 있잖아요? 비싼 입장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리랜드 매표소. 박현주 기자

사업을 접을까도 수십 수백번 고민했다. 그때마다 그를 다잡은 건 뜻밖의 응원이었다. 두리랜드 관련 기사에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지 누가 거기에 가냐'는 악플이 달리자 '대기업도 돈을 받는데 개인이 혼자 만든 놀이공원에 돈 받는다고 뭐라 할 거면 그냥 거기 가라'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그는 "돈 벌고 싶었다면 이거 안 했다"며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데 나는 명예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찍다 꿈꾼 놀이공원

그는 배우 시절부터 아이 잘 보기로 입소문 났다. 1975년 아역 드라마 열풍 당시 제작자였던 고석만 감독은 “자기 새끼 돌보듯 아이 보는 임채무를 데리고 다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끼리 깔깔대고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며 "손창민이가 아역 뛸 때 ‘아저씨 화장실 가고 싶어’ 이러면 번쩍 안아 화장실 데려다주고 그랬다"고 말했다. 

배우 임채무가 놀이공원 '두리랜드' 1층에 놓여진 만화 캐릭터 '둘리' 모형과 포즈를 취했다. 박현주 기자

"예전에 두리랜드 바로 옆 계곡에서 드라마 촬영을 많이 했습니다. 촬영 중간중간 계곡에 앉아 사람들 노는 걸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맨발로 놀다가 유리 같은 데 다치는 어린이들이 많더라고요. 놀이공원 하나 만들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어린이날에 아이들이 많이 방문했는데 300여명과 사진을 찍었다"며 "아이들이 커서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 오면 나를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해주겠지,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놀이기구 점검해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