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 쓰면 매국노?…중국에 부는 '애국소비' 열풍

중앙일보

입력 2020.05.16 05:00

수정 2020.05.18 10:26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아직도 외제 쓰세요? 국산품 이젠 좋아졌습니다. 국산품 사용으로 애국합시다."

10일 중국 브랜드의 날을 맞아 CCTV뉴스 앵커 주광취안(왼쪽)과 왕홍 리자치가 다이훠 방송을 하고 있다. [CCTV 뉴스 캡처]

지난 10일 중국 CCTV 뉴스(央視新聞) 온라인 생방송에 간판 앵커 주광취안(朱廣權)이 등장했다. 유명 왕홍(網紅·인플루언서) 리자치(李佳琦)와 함께였다. ‘중국 브랜드의 날(中國品牌日)’을 기념해 CCTV 뉴스가 벌인 이른바 다이훠(帶貨 : 스타나 유명인이 상품 판매에 나서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 방송이다. 두 사람은 두유, 맥주, 에어컨, 스마트폰 등을 소개했다. 모두 중국 제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지난 9일 중국 상하이의 한 쇼핑몰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쇼핑 방송이 이뤄지고 있다. [신화망 캡처]

이날 탄무지앙 머리빗은 소개된 지 2초 만에 1만 3000개가 판매됐다. 다른 상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약 950만 명이 이 방송을 동시 접속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한 마디로 인기 폭발이다.

지난달 1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마스크를 쓴 동상 옆을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코로나 충격은 중국도 컸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다.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그렇다고 수출은 회복이 난망(難望)이다. 세계가 전염병 방역에 정신이 없어서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내수로 여기는 듯하다. 최근 중국에서 활발한 것이 '신(新)국산품(新國货 또는 新國品) 구매 운동인 걸 보면 말이다. 국산품 부흥으로 침체된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것이다. 외제를 쓰면 매국노로 몰릴 분위기다.

"내수를 살려라!" 

지난 5일 중국의 인기 왕홍 장모판(오른쪽)이 베이징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가 운을 떼고 유명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호응하는 모양새다. 중국 국무원은 2017년부터 5월 10일을 중국 브랜드의 날로 정하고 정부 차원의 국산품 구매 장려 운동을 하고 있다. 올해도 CCTV와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들이 앞다퉈 국산품 구매 운동에 앞장선다. 주광취안, 리자치 콤비는 지난달 6일에도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후베이성 상품 판매 방송을 진행했다.
 
정부가 앞장서 물건팔이에 나서는데 기업도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핀둬둬(拼多多), 티몰, 징둥닷컴 등이 신국산품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벌인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핀둬둬는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벌인 ‘뷰티풀라이프·메이드인차이나(美好生活·中國造)’ 이벤트를 벌였다. 저장, 산둥, 장쑤, 푸젠, 후베이성 등 21개 지역에서 참여했다. 라이브 상품 판매 방송만 1만 개가 개설됐다.

핀둬둬의 뷰티풀라이프·메이드인차이나 이벤트. [인민일보 캡처]

지방정부 고위 관계자가 직접 등장해 물건을 팔았다. 티몰도 10~12일까지 ‘신국산품대상(新國貨大賞)’이란 이벤트를 열고 중국산 브랜드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판매실적도 나쁘지 않다. 핀둬둬의 이벤트엔 총 2억 명의 소비자가 참여했고, 팔린 제품만 100억 개에 달했다.

징둥닷컴의 신국산품계획 포스터. [중국경영망 캡처]

징둥닷컴은 국산품 브랜드 개발에 나섰다. 이른바 신국산품계획(新國品計劃)이다. 잠재력 있는 국산 기업을 징둥이 직접 육성한다는 것이다. 자본과 유통, 마케팅 등 제품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원한다고 천명했다.


이는 판매전략이기도 하다. 중국경영망(中國經營網)은 “징둥은 신국산품계획을 도와주면 더 많은 국산 브랜드가 세계에 진출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고 전했다. 징둥은 자체 앱에서 신국산품계획을 검색하면 관련 상품 페이지로 안내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징둥이 육성하는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이른바 ‘애국 마케팅’이다. 

그런데 이것. 중국에서 먹힌다.

지난달 1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화웨이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AFP=연합뉴스]

특히 젊은 세대에 잘 통한다. 중국산 제품 선호 경향은 20대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칸차이왕(砍柴網)은 “Z세대(1995~2004년생)는 중국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최근의 국산품 소비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젊은 세대의 국산품 소비 경향. 시작된 지 조금 됐다. 지난해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우링허우(90后·90년대생)는 토종 브랜드 제품 소비의 35.64%를 차지했다. 국산품 구매의 주력군이 이들 세대라는 거다.
 
애국주의 소비는 나이가 어릴수록 강해지고 있다. 지우링허우보다 Z세대가 더하단 얘기다. Z세대는 지우우허우(95后)와 링링허우(00后)다. 티몰에 따르면 지난해 티몰에서 지우우허우(95后)는 중국의 고유 간장 브랜드 하이톈 간장(海天酱油)을 무려 58만 명이 구매했다. 최근 신국산품 판매 운동에서도 이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쓴 채 책을 읽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더구나 Z세대는 중국이 강국의 지위를 확보한 세계에서 자랐다. 중국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전 세대와 다르다. 더구나 2013년 시진핑 시대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온전히 받은 첫 세대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정부의 애국주의 강화 기조에 동조할 확률이 높다.

중국 젊은이들이 로컬 브랜드 구입하는 이유. [자료 : 코트라 선양무역관]

애국심에만 기대는 것도 아니다. 중국 브랜드의 품질 경쟁력도 어느 정도 올라왔다. 코트라 선양무역관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가 소비시장 주류로 등장하면서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패턴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적정 가격+우수한 상품’을 주장하는 로컬 브랜드가 젊은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6년 ‘행복한 삶은 그리 비싸지 않다(好的生活, 没那么貴)’라는 슬로건 속에 출범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왕이옌슈엔’, 트렌디함에 애국마케팅을 얹어 판매량을 늘린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이 대표적이다.
 
이는 곧 한국 기업엔 중국 시장의 문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코트라 선양무역관은 “중국 로컬 브랜드는 높은 가성비를 무기로 삼은 뒤 여기에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를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 애국주의 성향이 강해지면 시장 환경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방법이 있나.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 거리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소비자, 특히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매력’을 고민해야 한다. 중국산을 압도하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도 되고, 중국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도 된다.
 
중국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팔아야 할 필요성. 더 커졌다. 중국에 진출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도 중국도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이제 소용없다. 중국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