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달 말, 프로축구 성남FC 훈련장인 탄천종합운동장. 자체 청백전 중 선수들 움직임이 느슨해지자, 골키퍼 김영광(37)이 불호령을 내렸다. 그의 한마디에 수비수 몸놀림이 다시 기민해졌다. 악착같이 붙고, 끝까지 따라가 공을 살려냈다. 그라운드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남일(43) 감독은 미소를 지었다. 김 감독은 “(김)영광 영입하길 잘했다. 실력은 물론, 후배를 잘 이끌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프로축구 성남FC 김·김 라인
18년전 전남서 선후배로 첫 만남
초보 감독과 최고참 선수로 재회
시즌 개막전 승리로 산뜻한 출발
김영광에게 선배 김남일은 ‘신’ 같은 존재였다. 김영광은 2002년 신인으로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당시 같은 팀 최고스타가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김남일이었다. ‘진공청소기’처럼 상대를 쓸어버리는 김남일의 멋진 플레이를 보려고 경기마다 소녀팬이 몰렸다.
김영광은 김 감독을 “롤모델이자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김영광은 “프로 2년 차인 2003년, 성남전에서 처음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날 감독님이 펄펄 날면서 중원을 틀어 막아준 덕분에 무실점했다. 그 경기를 계기로 주전 골키퍼가 됐다. 감독님은 내게 세계 최고 선수”라고 말했다. 김영광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을 8강에 진출시켰고, 이운재(47·은퇴)를 잇는 ‘거미손’으로 승승장구했다. 김영광은 “축구 인생을 열어준 분이 불러주셨기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2004년까지 전남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사람은 16년 만에 재회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 처지가 좀 다르다. 김남일은 ‘초보’ 감독이다. 팀 운영부터 관리까지 아직 낯설다. 김영광은 현역 시절의 김남일처럼 레전드급 선수다. 김영광은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통산 500경기(현재 496경기) 출전을 앞뒀다. 김 감독은 “수비진이 젊은데, 경험 많은 영광이 덕분에 든든하다. 감독 부담을 덜어주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영광은 “감독님과 전남에서 3년간 같이 뛰면서 늘 상위권이었고, FA컵 준우승도 했다. 예감이 좋다”고 말했다.
출발은 좋다. 성남은 올 시즌 정규리그 개막전에서 광주FC에 2-0으로 완승했다. 김영광은 두 차례 위기에서 선방을 펼쳐 김 감독에게 데뷔전 승리를 안겼다. 감 감독은 “목표인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선, 이제 내가 영광이에게 잘 부탁해야 하는 건가”라고 농담했다. 이에 김영광은 “지금까지는 내게 ‘큰 형님’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최고 감독님’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며 김 감독 손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은 잊었다. 올해부턴 지도자 김남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성남=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