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생기를 찾아도 예전 상태로 복귀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코로나가 밀어 넣은 내면의 공간에서 아프게 체득한 깨달음이었다. 사회적 관계가 일시 끊기고 홀로된 공간에서야 지구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연기, 매연, 폐기물로 뒤범벅된 지구를 딛고 문명의 달콤한 이득만을 취해왔음을 말이다. 화석연료는 문명의 동력, 플라스틱을 비롯한 온갖 신소재가 문명의 화려한 옷이라면, 그 대가를 치를 때가 다가왔다는 지구의 경고를 말이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 생산과 소비가 20세기처럼 유별났던 때는 없었다. 후손이 쓸 자원까지 다 축낸 번영의 질주였다. 1990년부터 30년간 지구를 괴롭힌 오염 총량이 과거 2000년간 누적된 총량을 능가했다 (데이비드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현대 문명은 자연 균형을 파괴
기후재앙·바이러스, 동시 역습
‘인류세의 종말’을 물려줘서야
‘K방역’에서 ‘K지구방재’로 선도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는 일란성 쌍생아다. 기후재앙은 빙산을 녹이고, 그 속에 결빙된 100만종의 바이러스가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그 중 1%만 소생해도 1만여 종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알래스카 빙산에서 발원했다. 기후재앙?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금 지구 평균 온도 1도가 상승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땅의 문명이 내뿜은 온실가스와 탄소 때문인데 1.5도 상승하면 SF영화가 현실이 된다. 적도 확대와 북상, 황열 창궐은 물론 기후난민 3.6억 명이 발생한다는 것. 2016년 파리기후협약은 2050년까지 평균 온도 2도 상승을 한계치로 내놓으며 대홍수, 가뭄과 기근, 해수면 상승, 도시 침수, 바이러스 창궐을 전제로 달았다. 문명학자 제레미 리프킨(J. Rifkin)은 2028년을 ‘화석연료 문명 종말의 해’로 예견했다. 8년 남았다.
경쟁 레이스를 포기 못하는 강대국들은 애써 눈을 감았다. ‘땅의 문명’의 동력인 석탄과 석유를 누가 쓰지 말자고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투자한 국제자본이 허용할까. OPEC이나 세계석유 거버넌스는 내일 당장 빙하 속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킨다 해도 채굴 중단을 결의하지 못한다. 백신으로 막자고? 자본주의에서 백신 개발은 이윤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기후는 공기(空氣), 공기는 누구나 공짜로 숨 쉬는 공공재다. ‘공유지의 비극’이 기후 재앙만큼 집약된 영역은 없다. 누구나 쓰고 버린다. 평균온도 4도 상승할 2100년 지구는 끝장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 경고처럼, 기후재앙이나 바이러스나 ‘플랜 B’는 없다.
코로나로 세계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우려하는데 기후재앙은 대공황, 대침체를 넘어 인류의 대멸절(Great Dying)을 뜻한다. 다섯 번의 대멸종에 이어 이제 여섯 번째 대멸절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사우루스 공룡이 아니라 인간, 인류세의 종언이다. 그러니 싱그러운 봄 날 창밖에 찾아온 나비와 곤충과 미물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대책은 있을까? 그린 뉴딜(Green New Deal), 미국과 유럽에서 고안한 국제공조 프로그램인데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경쟁레이스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아당길 천하무적 구세주는 아직 없다.
K-방역에 성공한 한국이 나서면 어떨까. 지난 8일,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웨비나(Webinar)에서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근사한 제안을 했다. 한국이 배양한 위기관리 공동체 정신에 첨단과학을 융합한 소프트파워로 ‘K-지구방재’를 선도하자는 것. G2가 서로 겨루는 틈새에서 ‘매력국가 한국’의 세계사적 과업이다. 지구의 역습, 바야흐로 ‘지구의 시간’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