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것을 검다고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때 젊음을 보낸 사람들은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를 불렀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이 가사를 읊조리던 사람들이 시대의 주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시(是)를 시라 못하고 비(非)를 비라 못하는 풍경이 사정기관 안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소금 짠맛론
상식 뒤집히는 성역서 정권 쇠락
탈원전 과정의 위법성 밝혀져야
감사원은 문 대통령이 성역화한 탈원전 문제에 몇 가지 답을 내놔야 한다. 2018년 6월 정권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자마자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모종의 작용을 가해 월성 1호 원자로를 조기 폐쇄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이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한수원의 이사들이 갑자기 긴급 이사회로 모여 원전 1호의 졸속 폐쇄를 결정하고, 보고서에 경제성과 가동률이 축소·왜곡된 수치로 기재된 사실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수원과 이사들은 이 문제 때문에 배임죄로 고발됐다. 2019년 9월 국회도 배임 문제를 중시해 본회의 의결로 감사원 감사를 요구했다. 해괴한 것은 감사원이 국회법에 따라 한 차례 연기 절차를 포함해 올해 2월 말까지 감사 결과를 내놔야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4·15 총선 전에 결과를 내지 말아 달라는 정권 쪽의 압박이 있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만 난무했다.
탈원전 문제가 감사원의 위법 상태를 낳았으니 평생 판사였던 최재형 감사원장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 원장은 경기고 학생 시절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업고 등하교하기 시작해 사법연수원 때까지 어부바 우정을 이어 간 의리와 뚝심의 사람이다. 그는 친자식 외에 두 아들을 입양해 키운 따뜻한 인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최재형이기에 상식과 법치가 통하지 않는 성역을 인정할 수 없었다. 탈원전 정책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조치는 적법하게 이뤄져야 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인간 사회의 작동 원칙이 문재인 정부라고 달라질 수 없지 않겠나. 권력의 부패는 은밀한 성역에서 진행된다. 성역이 강성하면 정권이 쇠락한다. 감사원은 이 정권의 성역인 탈원전 분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