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은마가 8억 됐던 그때···부동산, 금융위기 이후 닮아가나

중앙일보

입력 2020.05.09 05:12

수정 2020.05.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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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이 지난 6일 2023년 이후 수도권에 연평균 25만가구+α 수준의 주택 공급 계획이 담긴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청약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됨에 따른 혼잡을 예방하고 신종플루 확산 방지를 위해 원칙적으로 인터넷 접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2009년 9월 정부(대통령 이명박)가 발표한 보금자리시범지구 사전예약 청약일정이다. 금융위기 다음해인 200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플루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마찬가지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으로 선언한 감염병이다. 

주택시장 금융위기 전후 '재연'
집값 약세 전환, 팬데믹, 공급 확대 대책
공급 충격 흡수할 체력은 차이
'불확실'과 '확실'이 혼재

팬데믹, 사전예약... 10여년만에 다시 주택시장에 등장한 말들이다. 
 
지난 6일 정부는 수도권 3기 신도시에 착공 전 미리 청약접수하는 사전청약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과거 사전예약과 같은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듬해 '신종플루' 팬데믹

 
강남 집값 하락→팬데믹→대규모 공급. 지난해 말부터 주택시장에서 나타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다. 7일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아파트가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서울 아파트값이 3월 말부터 6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내년부터 수도권 주택공급 고삐를 바짝 죈다. 


10여년 전 금융위기 전후와 비슷하다. 금융위기 때는 팬데믹 이후 서울 장기 집값 침체가 이어졌다. 코로나까지 1부에 이어 앞으로 2부에서도 장기 침체까지 되풀이할까.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강남 집값 선두주자인 강남구 아파트값이 2008년 금융위기 두 달 전인 7월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위기 충격으로 10월부터 서울 전체 아파트값이 내리기 시작해 다음해인 2009년 3월까지 6개월(1차 하락)간 하락한 뒤 다시 상승세로 반전했다. 2009년 9월 정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풀어 저렴하게 공급키로 한 보금자리주택의 사전예약을 접수했다. 
  

집값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내려갔다. 2010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3년 6개월(1차 하락) 간 간간히 반짝 오름세를 보이며 하향 곡선을 이어갔다. 바닥을 친 뒤 3년 2개월이 지난 2016년 10월에야 금융위기 직전 고점을 회복했다. 6년 8개월간의 침체 터널이었던 셈이다. 금융위기 시점부터 보면 8년 1개월이다. 이 사이 집값이 11%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이는 평균이고 20~30% 하락이 단지가 많았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 84㎡(이하 전용면적) 12억원대에서 8억원대까지 떨어졌다. 금융위기 직전 5억원 위로 올랐던 노원구 상계동 주공 84㎡가 4억원에서 바닥을 쳤다.

 

2022년까지 '입주 홍수', 2023년 이후 '분양 쓰나미'

 
당시 수도권 집값 장기 침체는 금융위기 여파에 공급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금융위기 이후 지방 아파트값은 4개월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서울 약세 기간 동안 줄곧 상승세를 보였다. 서울 아파트값이 0.38% 내린 2011년 지방 아파트값은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2004년 이후 역대 최고 상승률(18..34%)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2010년 3월부터 내려갔다가 제자리로 오는 동안 지방 아파트값은 39% 급등했다.

 
금융위기 후 서울 아파트값 2차 하락은 금융위기보다 공급 확대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금융위기 후유증이 지방보다 산업이 집중한 서울에 더 크긴 했지만 서울과 지방 간 집값 움직임을 이렇게 차이 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부가 분양가가 워낙 저렴해 ‘반값 아파트’로 불린 보금자리주택을 대거 공급한 효과가 컸다. 2011~14년 연평균 서울 분양물량이 3만5000가구로 그 이전 2007~10년 연평균 물량(2만6000가구)보다 35% 더 많았다. 
 
수요를 초과한 공급 과잉으로 미분양이 쌓였다. 수도권 미분양이 금융위기 무렵 2만7000가구에서 2013년 말엔 3만3000가구까지 늘었다. 2011~13년 3년간 분양한 35만가구의 10분의1에 가까운 물량이다. 서울 미분양은 2012년 말 3500가구까지 늘었다.   
 
아파트 입주물량도 금융위기 직후 2009~10년 연간 2만4000~2만5000가구로 줄었다가 2011년 이후 3만~4만가구로 꽤 늘었다.

 
집값이 내리며 당시 집값이 소득 대비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기존 집을 사지 않았고 거래가 급감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중간 소득 대비 아파트값 비율(PIR)이 금융위기 전 10~11에서 2013~14년 8~9까지 내려왔다. 연간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2012년 4만5000건으로 전체의 3%에 불과했다. 재고 대비 거래량 비율이 집값 폭등기였던 2006엔 10%가 넘었고 집값이 많이 오른 2015~2018년엔 6~8%였다.

 
이번 주택공급 물량이 당시보다 많다. 우선 신규 공급에 앞서 입주가 쏟아진다. 정부가 추산한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올해 5만3000가구, 내년 3만6000가구, 2022년 5만가구로 3년간 연평균 4만6000가구다. 2017~19년 3년 연평균(4만가구)보다 15%, 최근 10년 연평균(3만4000가구)과 비교하면 3분의 1이 더 많다.  

입주

국토부 관계자는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실제로 착공한 물량을 기준으로 입주 예정 물량을 뽑았다”고 말했다.  
 
신규 공급 쓰나미에 앞서 입주 홍수가 밀려오는 셈이다.

 
정부는 기존 수도권 30만가구 공급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7만가구, 2023~25년 총 18만6000가구(연평균 6만2000가구)를 분양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 6일 발표한 서울 추가 공급물량 총 7만가구가 더 있다. 
 
이는 2010년대 초반 보금자리주택으로 많이 늘어난 공공 공급물량 연 최대 5만가구를 능가하는 물량이다. 
 

더 강도 높은 재건축·분양·대출·세제 규제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규제도 지금이 금융위기보다 강하다. 당시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규제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제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부세 등이다.  
 
최근 몇 년새 집값이 많이 오르며 환수제와 분양가 제한 강도가 세다. 금융위기 이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3주택 이상 중심으로 완화됐지만 지금은 2주택도 적용한다. 공시가격 현실화와 세율 인상 등으로 종부세 부담도 만만찮아졌다. 15억원 초과 주택은 아예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공급 쇼크를 받아낼 주택시장 체력은 지금이 낫다. 집값 하락 저항력이 더 세다는 뜻이다. 금융위기 이후 공급량이 ‘홍수’ 등으로 표현할 만큼 급증한 것은 아니다. 이미 미분양이 쌓이고 주택담보대출 연체가 늘며 시장의 힘이 빠지던 때에 공급이 밀려왔다. 대출을 갚지 못해 경매에 넘어간 서울 아파트가 2013년 8000건을 넘었다. 금융위기 전엔 4000~5000건이었다.  
 
지금은 미분양이 역대 최저 수준이고 집값 버팀목인 전셋값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 금리여서 대출 부담이 무겁지 않다. 
 
정부가 밝힌 공급 물량이 많기는 해도 강남 등 주요 지역 수요를 흡수하기엔 부족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0년대 초반엔 ‘부동산은 끝났다’는 제목이 책이 나올 정도로 심리가 꺾였지만 지금은 아직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살아있다. 국민은행이 매달 조사하는 서울 매수우위지수가 지난달 기준으로 67.0이었다. 100 미만이면 매도자가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12·16대책이 나온 12월 122.8에서 내리기 시작해 지난 3월 100 밑으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초반엔 30 이하로 2012년엔 8.1까지 내려갔다.  
  

금융위기 이후 물가보다 못 오른 집값 

 
현재로썬 전망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고, 코로나의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물불 안 가릴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를 병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극복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인 타워팰리스.

국내의 경제적 여파가 이제 시작됐고, 주택시장까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밀려오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코로나 영향이 본격화한 뒤 규제 완화도 변수다. 코로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주택시장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서울 집값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코로나에서 벗어나면 다시 오르리라는 것도 확실하다. 바닥까지 깊이와 범위, 회복까지 기간은 불확실하다.  
 
서울 아파트값은 가격지수 기준으로 2008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현재 15.9% 올랐지만 물가상승률(22.3%)을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아직도 금융위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이 적지 않다.

 
국내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대명사로 꼽히고 금융위기 당시 최고가 아파트였던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64㎡가 지난달 30억원에 거래됐다. 2008년 금융위기 전 최고 거래가가 29억3000만원이었다. 금융위기 후 16억원까지 10억원 넘게 떨어졌다가 지난해 11월 32억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위기 후 바닥을 기준으로 보면 두 배로 뛰었지만 금융위기 전에서 보면 별로 오른 게 없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