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권혁재의 사람사진]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중앙일보

입력 2020.05.06 00:40

수정 2020.05.0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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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람사진/ 모정탑

사람은 이미 돌아가고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 없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 나선 겁니다.
그 사람은 아홉해 전에 돌아갔습니다만,
남긴 돌무더기는 늘 거기 있을 터기 때문입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716, 노추산 자락에 들어섰습니다.
끝 간 데 없이 돌무더기가 이어졌습니다.
돌 놓고, 굄돌 올리고, 그 위에 또 돌 올리기를 수백·수천 차례,
우리는 그렇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 하나를 탑이라 부릅니다.
이런 탑이 자그마치 3000개가 넘습니다.
숫제 탑 하나하나가 이어진 게 길입니다.
차순옥이란 여인이 홀로 쌓았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스무 여섯해, 움막을 짓고 살며 그리했다고 합니다.
 

차여사는 한평남짓 움막을 짓고 26년간 탑을 쌓았습니다.당시 움막은 사라졌고, 새롭게 정비한 움막이 덩그렇습니다.

 
구천사백구십 날 돌 하나씩 쌓은 게 탑이 되고 길이 된 겁니다.
그 오랜 날 산중에서 홀로 3000탑을 쌓은 사연이 애달픕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 4남매를 둔 어머니에게
자식 중 둘이 먼저 떠나는 우환이 겹쳤습니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서 비롯된 겁니다.
돌 하나, 굄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염원인 겁니다.
자식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이름하여 모정탑(母情塔)입니다.
 
 

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하나씩 탑을 쌓습니다.

모정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돌을 하나씩 쌓습니다.
또 다른 탑이 생겨납니다. 또 다른 탑 길이 됩니다.
어머니는 돌아갔습니다만,
돌에 밴 어머니의 염원이 우리의 마음에도 탑 길을 내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