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호소문' 쓴 대구 의사, 프로야구 개막 시구 나선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0.05.05 05:00

수정 2020.05.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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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사진 본인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워온 제가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선다면 대구 시민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수락했습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협회장이 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2020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개막전 시구자로 마운드 위에 오른다. 이날 삼성은 NC 다이노스와 경기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던 프로야구는 이날 오후 2시 전국 5개 구장에서 일제히 막을 올린다. 사상 최초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다.  

5700명에 대구 의료지원 요청한
이성구 대구시의사협회장
"대구 시민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5일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 나서

 4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처음에 제의가 왔을 때 깜짝 놀랐다”며 “야구를 보는 것만 즐기지, 실제 잘하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출근길 금호강에 들러서 돌을 던지며 연습했다. 혹시 시구 때 제가 공을 못 던지더라도 코로나19로 그동안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삼성 구단은 지난달 29일 “이 회장은 2월 말 코로나19가 대구를 뒤덮기 시작하자 눈물의 호소문을 통해 전국 각지의 의료지원을 끌어냈다”며 “모든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 회장에게 개막전 시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삼성라이온즈파크 전경. [중앙포토]

 대구에서는 지난 2월 18일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 일주일 만에 지역 내 확진자는 500명대를 돌파했다. 같은 달 25일 오전 이 회장은 전국의 의사 5700여 명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의료인력 자원에 참여해달라는 A4용지 한장 분량의 호소문을 담았다. 


 그는 문자메시지에 “응급실은 폐쇄되고 선별 검사소에는 불안에 휩싸인 시민이 넘쳐나지만,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피와 땀·눈물로 대구를 구하자”고 썼다. 이후 전국에서 의료진이 몰려왔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어떤 마음으로 호소문을 썼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2월 24일 밤에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썼다. 대구 지역에 환자가 처음 생겼을 때 10명대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했는데 순식간에 100명이 넘어가며 종합병원 의료진까지 격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초반에는 코로나19 관리체계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기준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에 의하면 코로나19 환자를 만났던 의료진들은 모두 14일 격리를 해야 해서다. 격리병동과 선별진료소에 의사가 필요했는데 종합병원엔 의사가 부족했다. 도움을 요청한 이유다.  
 
문자 한 통에 전국에서 의료진이 달려왔는데.  
 2~3일 만에 370여 명의 의사가 돕겠다고 연락 왔다. 한꺼번에 의사가 몰려 자리 배정이 늦어지자, 빨리 돕고 싶다며 성화를 하던 의사도 있었다. 너무 감사하다.  
 
두 달 넘게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싸웠다. 아쉬운 점은.
 알지도 못하는 적한테 기습을 당했다. 초반엔 마스크와 방호복이 부족했다. 하지만 아쉽다고 하기보다 어려웠다고 보는 게 맞다. 관리지침을 메르스 사태 때 만들었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사망률이 20%에 달해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기준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아무 증상 없는 사람도 음압격리병실에 입원시키는 게 원칙이니 병실 등 모든 의료자원이 부족했다. 집에서 입원을 대기하며 사망하는 환자도 많았다. 
 
어떤 대책을 마련했나.  
 대구시의사회에서 모여 전화 상담을 시작했다. 한 의사당 환자 10명을 맡았고, 전화해서 상태를 물은 뒤 심각하면 바로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사망률을 줄였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를 생활치료센터에 입소시키면서 치료 체계가 잡혀 나갔다. 질병관리본부 지침도 코로나19에 맞게 바뀌었다. 시민들과 차분히 잘 이겨냈던 거 같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는.  
 최근엔 대구에서 신규 확진자 0명을 기록하는 날이 늘고 있다. 안정세지만, 앞날은 알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가을·겨울 재확산을 경고했다. 대구도 재유행을 대비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은 전보다 편안해졌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